김중혁의 소설, <나는 농담이다>를 읽고.
이게 다 우주가 나와서다.
스푸트니크를 지껄이고 싶은 것은.
한 때 유아교육 학도였기에,
나는 러시아의 스푸트니크를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1957년에 발사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이다.
스푸트니크가 유아교육에 상당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그것이 ‘쇼크’라는 말과 제휴를 하면서 부터다.
냉전 시대에 우주를 놓고 벌인 한판 승부에게
러시아에게 선수를 빼앗겼다는 ‘스푸트니크 쇼크’로 인하여
미국은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스푸트니크는
유아교육자들의 밥줄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중이다.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지구를 인간 육체에 대한
감옥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으며 또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여기’로부터 달로 가려는 열성을 보인 적도 없었다.
반드시 신 자체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하늘에 계신 인간의 아버지인 신의 거부로 시작했던
근대의 인간해방과 세속화는
하늘 아래 모든 피조물의 어머니인 지구를 거부하는
매우 치명적인 결과로 끝이 나야만 하는가?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중에서
이일영의 직업은 우주 비행사다.
우주로 떠나기 전, 그는 어렵게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
떠나는 그를 어머니는 말렸지만,
그는 어머니를 지구에 남겨둔 채 우주로 떠났다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된다.
일단 아직까지는 꾸준하게 인간의 가장 핵심 조건인 지구.
그것을 떠난 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음성 파일, 곧 말이었다.
그리고 아들을 지구 밖으로 떠나보낸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편지, 역시 말이었다.
이일영의 동복형제 송우영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컴퓨터 A/S 기사라는 또 다른 직업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밥벌이용일 뿐,
그의 정체성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에 담겨있다.
그는 평생 죽지 않고 산다면
농담 속에서 살고 싶다고 농담한다.
농담이 있는 곳에서
지속적으로 부활하기를 꿈꾸는 코미디언.
그 역시 형이나 어머니처럼
말을 남기고, 혹은 말로 남고 싶은 것이다.
농담이란 장난스럽고도
가볍게 실없이 하는 우스갯말이다.
이와 같은 농담이 진정한 농담이 되기 위해서는
진지하고도 무거운 실속 있는 말이 매우 필수다.
대조되고 비교되는 상대가 있어야 비로소
그것 자체의 본연을 오롯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송우영의 코미디에는
항상 묵직한 메시지가 도사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과 설교가는
다른 듯 엇비슷하다.
코미디언은 농담을 위해 메시지를 끌어오는 반면,
설교가들은 메시지를 위해 농담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차연과 세미.
그들은 말을 남긴 자들,
그리고 말로 남고 싶은 자의 말을 들어주는 청자들이다.
그것도 깊이 공감하는 좋은 청자들이다.
나아가 그들은 남겨진 말들을 한데 엮어 세운
말들의 구조 속에서 출산되는 의미를 받아내는 산파들이다.
세미는 한 시간 반 동안 거의 쉬지 않고 편지를 읽었다.
마지막 편지를 읽고 나서 깊은 한숨을 쉬더니,
세미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세미는 급하게 마이크를 껐지만
울음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바깥으로 흘러나온 뒤였다.
세미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녹음실 바깥에 있던 강차연까지 울기 시작했다.
송우영은 울 수 없었다.
“나 어땠어? 괜찮았지?”
세미가 녹음실을 나오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울고 있던 강차연이 세미를 안았다.
송우영은 말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기만 했다.
-본서 중에서
최상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충 좋은 청자 측에 드는 나는
세미와 강차연과 함께 울었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이일영의 말과
어머니의 말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지어낸
그들의 엉뚱한 상상력이 몹시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게 소설은 이일영의 목소리와
송우영의 농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세미의 코미디로 갈무리 된다.
그들의 말들을 한데 엮어
이야기를 만들어낸 당사자의 농담으로.
사는 건 당연히 의미가 있죠.
백 퍼센트 의미가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야 의미가 생깁니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의미가 없어져요.
-본서 중에서
의미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나
땅에서 솟아나지 않는다.
그것은 길고도 지루한 이야기,
꾸준하고 집요한 맥락 속에서
버티고 견디고 인내하다가 마침내 생산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경구나 잠언 혹은 교리와 같은
깔끔한 문장으로 주어지기 보다는
횡성수설하고 어수선한 속된 말들 속에서
두리뭉실 피어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농담이다>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없지 않다.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팬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잔의 그림 몇 점이 떠오르기도 했다.
복수 시점, 형태의 단순화, 그리고 색체 분할 등으로 구현한
세잔의 세상은 실제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러나 세상의 실재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팬시해 보이는 것이겠다.
소설 <나는 농담이다>도 다르지 않다.
소설스러운 소설,
그래서 구질구질한 실제와는 다른 가공된 고급스러움을 입은,
그러면서도 실재의 측면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이야기였다.
“짝짝짝!”
책 말미에 뜻밖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에이플러스 박수였는데,
책을 서점에서 구입하여 끝까지 다 읽은 독자에게 주는
작가의 사은품이었다.
처음엔 작가의 너스레에 피식 웃고 말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꽤 괜찮은 답례였다.
박수를 받아본 지가 까마득했던 것이다.
박수 받지 못하는 삶을 견디고 있는 자에겐
역시나 농담이 필요하다.
#Nov. 26. 2019.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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