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창고지기들 2019. 9. 24. 17:45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책,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를 읽고.



이 책의 원제는 <Lament For a Son>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통곡을 

글로 엮어 묶은 것이다. 

작가의 애가(哀歌)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참고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것이 결국은 애가(愛歌)임을 깨닫게 된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노래가 라멘트인 셈이다.


사탄은 아들의 죽음

(절대로 화목의 대상이 될 수 없는!)이라는 검으로 

작가의 가슴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그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몸부림친다. 

그러던 어느 날 찢겨 벌어진 상처의 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아들이 없는 세상은 

기쁨의 빛을 잃어버린 무채색의 세상일 뿐이다. 

그러나 시간을 타고 꾸역꾸역 몰려드는 은혜는 

결국 <아들을 잃은 아버지>라는 정체성을 그에게 입힌 채 

세상에 세우고야 만다. 

그렇게 아들을 잃은 아비는 죽음으로 인하여 

더욱 선명해지고 아름다워진 삶을 체감하면서, 

마침내 아들과 다시 만나게 될 그 날(부활)을 기대하면서, 

고통과 기쁨으로 뒤엉킨 삶을 아낌없이 살아내기로 한다.  



모든 죽음에는 그 만의 특징이 있듯이 

같은 죽음을 향한 애통함도 모두 다르다. 

애통함의 본질(inscape)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역동적인 슬픔은 

다른 사람의 판단이 개입되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당신은 오늘 눈물을 흘리나 어제는 눈물이 말랐고, 

나는 어제 눈물을 흘렸으나 오늘은 눈물이 마른 것은 이상하게 여긴다. 

그러나 나의 슬픔이 당신의 슬픔은 아니다. 

-본서 중에서


=모든 고통과 애통함에는 

저마다 확연히 다른 독특함을 지닌다. 

특별하지 않은 고통은 없다. 

나의 슬픔과 고통은 당신의 것과 다르다. 

그것을 이해하고 수용할 때, 

폭력적이 될 가능성은 줄어들고, 

비로소 위로는 초대된다. 

욥의 세 친구들처럼 입바른 소리를 하는 치들은 

어디에나 널렸다. 

그들이 위로를 보이콧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정오에 어둠이 내렸습니다. 

“에릭이 죽었습니다”라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빛은 희미해졌습니다. 

이 어둠 속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빛이 있을 때, 저는 당신을 훔쳐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저는 당신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전에 제가 당신을 찾은 적이 없었더라면, 

찾았지만 결코 만나지 못했더라면, 

당신의 부재가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있는 곳은 당신의 계시지 않은 곳이 아니라 

당신의 임재가 희미하면서도 불안하게 함께하는 곳인가요? 

제 눈이 이 어두움에 순응하게 될 까요? 

희미한 불빛보자 없는 완전한 어두움 속에서 

당신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 속에서 당신을 찾아낸 사람이 있었나요? 

-본서 중에서


=작가의 탄식을 듣고 있었을 때, 

이승우 작가의 <生의 이면> 마지막 부분이 생각났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어둠 속에 오랫동안 몸과 의식을 

잠근 채 꼼짝하지 않고 있다 보면 

사물들이 나름대로의 형상을 빚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뜻에서 어둠도 빛이다. … 

어느 날부터인가, 어둠이 그와 충분히 친해졌을 때, 

박부길은 어둠이 뿜어내는 빛 아래 웅크리고 앉아 

충동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生의 이면> 중에서


어둠에 몸과 마음을 충분히 잠글 때, 

비로소 어둠도 빛임을 깨닫게 된다.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는 법을 익히다 보면, 

어둠 속에서 조차 새롭게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게 된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그 어둠속에서 창조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여전히 나는 후회하고 있다. 

나는 후회와 더불어 살리라. 

후회를 내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서 

내 자신에게 입힌 상처 중 하나로 남겨두리라. 

그러나 나는 그 후회를 영원히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후회를 기억해 살아남은 자들에게 

더욱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 후회를 기억함으로 언젠가 우리가 서로의 품안에 

서로를 던지며 “미안해”라고 말 할 수 있는 최후의 심판 날을 향해 

확실한 비전과 강한 소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런 날을 확실히 우리에게 허락하실 것이다. 

사랑에는 그런 소망이 필요하다. 

-본서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가 갖는 감정들 중 하나는 ‘미안함’이다. 

끝도 없이 뻗어 나오는 후회들이 미안함을 꽃피우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미안함이 떨어진 자리에도 열매는 맺힌다. 

내게 그것은 ‘고마움’이다. 

먼저 떠나버린 사람이 남은 자에게 듣고 싶은 말은 

‘미안해’가 아니라 ‘고마워’일 테다.


내가 중심이 되어 잘못했던 것에 초점을 맞출 때 

‘미안해’가 피어난다. 

반면, 상대가 중심이 되어 

그가 내게 베풀어주었던 사랑에 초점을 맞출 때, 

그리고 상대의 부재로 인한 고통(깊고 어두운 신비)이 선사한 

인생의 전혀 다른 결들을 깨달을 때, 

비로소 ‘감사해’는 맺혀진다.


사랑하는 아비를 잃은 후,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미안함이 아니라 감사함이다. 

그로 인하여 얻게 된 세상, 

그의 부재로 받게 된 세상으로 인하여 

나는 감사하며 오늘을 살고 있는 중이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분의 명령은 고통으로의 초대다. 

사랑하다 생긴 수많은 고통과 상처들은 

그래서 영광이 될 것이다. 

사랑이신 그분 앞에서!




#Sep. 20. 2019.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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