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브살렐의 놋제단

창고지기들 2018. 11. 21. 20:44








브살렐의 놋제단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마 4:25)


틀림이 없는 말씀이다. 

솔로몬에게는 이미 지혜가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밑천으로 여호와께로부터 

부와 재물과 영광까지 덤으로 받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밤 일은 모두가 다 아는 바다. 

일천 번제 후,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소원을 물었고, 

그는 지혜롭게도 지혜를 구했다. 

지혜의 용도는 

여호와의 백성들 위한 재판용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여호와의 의를 

그의 나라에 실현시키는 것을 의미했고, 

동전의 다른 면인 

인자(헤세드, 언약의 사랑)를 백성들에게 

베푸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바르게 대답한 솔로몬의 인생에는 

여호와의 의가 가득했다. 

지혜를 결재한 그에게 부와 재물과 영광이 

사은품으로 함께 배달되었던 것이다. 

여호와의 의는 그런 것이었다. 

에누리 없이 균등하게 분배되는 

공의를 넘어서는 것, 있는 자에게 

더 후하게 얹어서 나눠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솔로몬 지혜의 밑천은 

어디서 얻은 것일까? 타고난 것일까? 

긴박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개발된 것일까? 

아니면 그 이름도 유명한 

<일천 번제>의 결과물일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9: 10)


확실한 것은 일천 번의 예배 동안 

솔로몬이 경험한 것이 겸손이었다는 점이다. 

경배의 대상인 여호와 앞에서 

그는 몸을 낮추었을 테고, 

그것의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겸손이 몸에 익어갔을 것이다. 

겸손은 마음을 가난하게 하고, 

지혜는 가난한 마음에 곧잘 찾아와 머문다. 

그 사이 친구인 명철은 지혜를 방문하고, 

겸손한 자로 하여금 현재를 꿰뚫어 

진실을 발견케 한다. 

어쩌면 일천 번의 예배 동안 

솔로몬은 명철의 지도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을 엿보았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백성들, 

그것도 가난한 백성들이다. 


암튼, 솔로몬만큼 시작이 좋았던 왕은 

스라엘 역사 어디에도 없다. 

수 천 년이 지난 지금 보기에도 

그의 처음은 흐뭇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불안한 것도 사실이지만.  



옛적에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살렐이 

지은 놋제단은 여호와의 장막 앞에 있더라 

솔로몬이 회중과 더불어 나아가서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대하 1:5-6)


불안할 만큼 흡족한 마음으로 

솔로몬의 일천 번제 현장을 찾는다. 

기브온 산당의 모세의 성막. 

그 곳은 여전히 예배 처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예배실의 센터는 

그 옛날 브살렐이 지었던 놋 제단이다. 

그 위에서 번제물들이 쉬지 않고 타올라 

세상에 아로마 향을 흩뿌리는 중이다. 

자연스럽게 브살렐이 만든 놋 제단에 시선이 멈춘다. 

450년도 훨씬 넘은 유물이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뛰고 있는 성스러운 물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여러 가지 기술로 나무를 새겨 만들게 하리라

(출 31:1-5)


그것은 아카시아를 조각한 후 

그 표면을 놋으로 싸서 만든 제단이다. 

가로와 세로 2.3미터, 높이 1.3미터 크기의 단으로 

각 모서리에는 위로 튀어나온 뿔이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철망이 설치되어 있고, 

철망 네 귀퉁이에는 놋 고리를 달아 놓았다. 

이동할 때에 채를 끼우기 위해서였다. 

철망 위에서 제물들은 연기로 대체된다. 

무럭무럭 하늘 높이 올라가는 연기가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애틋함을 떨어뜨린다. 

부끄럽게도 여전히 육식을 좋아하는 내게 

고기에 향신료를 뿌려서 태우는 냄새가 

싫을 리 없다. 


오래도록 놋 제단을 바라보다가 퍼뜩 놀란다. 

그것이 박물관의 유물로 고이 모셔지는 대신에 

버젓이 예배의 현장에서 흠씬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주변을 둘러본다. 

혹시 내게도 브살렐의 놋 제단과 같은 것이 있을까? 

여전히 내 삶에서 주를 예배하는데 

거뜬히 사용되고 있는 오래 된 것은 없을까? 


안타깝게도 오래 묵은 것이 거의 없다. 

네 차례의 대륙을 넘나들던 이사 탓이다. 

그럼에도 유독 눈에 밟히는 것이 하나 있긴 하다. 

그것은 성경책, 

아가페에서 출판한 <쉬운 성경>이다. 

그러고 보니 2003년부터 지금까지 

그것은 줄곧 그분을 예배하는데 사용되는 중이다.


처음 그것을 손에 넣은 이유는 

성서 유니온에서 출판하고 있는 

<고학년 매일 성경 큐티>라는 책의 원고를 

집필하기 위해서였다. 

책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기에, 

성경을 쉬운 말로 번역한 

<쉬운 성경>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 후로 16년 동안 별로 쉽지 않은 여정을 

나는 <쉬운 성경>과 함께 했다. 

물건을 험하게 쓰는 편이 아님에도, 

집요한 엔트로피의 역사는 

그것에 커다란 틈을 창조해냈다. 

강력 접착제로 붙여 손질도 해봤으나, 

요한계시록 22장 이후의 부분은 

다른 책들과 상당한(?) 

물리적 거리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스스로를 

고매(고학년 매일 성경 큐티) 계의 좀비라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16년 동안 고매의 책임 편집자는 5번 바뀌었고, 

함께 집필을 시작했던 이들은 모두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물론, 나도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분의 열심은 번번이 나의 포기를 능가하셨다.


오래 전, 싱싱하기만 했지 

분별력이라곤 없었던 나는 겁도 없이 

그분께 서원을 해버렸다. 

무려 전 세계의 아이들을 주께로 인도하겠다는 

무시무시한 약속을 했던 것이다. 

비전은 모름지기 크게 가져야 한다는 

번영 신학의 왜곡된 메시지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갚을 길 없는 일만 달란트 빚 때문에 

감옥에 갇힌 채 부채감으로 괴로워해야 했다. 


그러던 중 은혜가 임했다. 

자비하신 채권자께서 묵상 원고를 집필하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어린 성도님들을 

주께로 인도할 기회를 만들어주신 것이다. 

이후로 이 사역은 단순한 원고 집필이 아닌 

개인적인 특별 예배로 점차 발전되어 갔다. 

그렇게 나는 이 일을 하는 동시에, 

이 일로 나를 하게 하면서 16년을 지나왔다.


450년에 비하면 16년은 고작일 터이나, 

그럼에도 채에 꿰어 가지고 다니면서 

네 개의 대륙에서 그것을 가지고 

그분을 예배했던 추억은 고작일 수만은 없다. 

그렇게 내게 <쉬운 성경>은 브살렐의 놋 제단이다. 

그래서 소망하게 된다. 

이것이 계속해서 근면히 사용되는 제단이 되기를, 

박물관의 유물처럼 책장 깊숙한 곳에 전시되는 대신에 

늘 현재에 사용되는 제단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키리에 엘레이손!






#Nov. 16. 2018. 사진 & 글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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