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약손
#1. 발진의 하진군
팔 전체에 붉은색 발진이 어지럽게 돋아나 있었다.
-어제 오징어를 먹어서 그런가?
말 하지 않았는데, 일전에도 그것을 먹었다가
살짝 가려운 적이 있었다고 하진군이 말했다.
곧장 알레르기 약과 연고를 구입하여
며칠 먹고 발랐다.
그러나 기대했던 차도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약이라도 올리려는 듯
만발해 가는 발진이었다.
배와 등에서 팔, 다리사이를 지나 종아리까지
장미색 발진이 마구잡이로 피어났다.
결국 하진군의 목 아래쪽은 붉은 장미물이
옴팡 들어버렸다.
자고 일어나면 아이의 발진부터 들여다보았다.
징그럽기 짝이 없었으나
손을 뻗어 어루만지지 않고는 못 배겼다.
안타까움과 무능함 사이에 낀 어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아들의 상처를 쓰다듬으면서
치료의 주께 낫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또 구걸하는 것.
#2. 상처를 꺾으시는 하나님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송사는 처리할 재판관이 없고,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
(렘 30:12)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유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계신다.
-여기도, 저기도, 또 거기도! 이를 어쩌누?
상처가 너무 심해서 이 세상엔 치료해줄 약이 없구나.
유다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하나님의 탄식은 깊어만 간다.
-그러게 작작 좀 할 것이지.
네가 저지른 악행으로 이렇게 심한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니냐?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허다하니
네가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냐?
(렘30:15)
유다는 어리석다.
제 몸에 상처를 내는 줄도 모른 채
악행에 서슴없었던 것이다.
죄의 독소가 몸속에 조금씩 더 퍼질 때마다
유다는 장미빛 하진군처럼
가려워서 긁기 바빴을 터이다.
실컷 긁히고 난 발진은
더욱 격렬하게 피부를 붉게 물을 들인다.
거듭되는 악행으로 상처를 하나 둘 더하던 유다는
마침내 상처로 충만해진다.
유다의 피부에 붉은 꽃이 셋 넷 더해질 때마다
하나님의 탄식도 깊어만 가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신가?
유다를 낳으신 분이 아니신가?
자식의 상처를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능력이
어미에게는 없다.
결국, 하나님은 유다의 상처를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낫게 하기로 마음먹으신다.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
(렘 30:17b)
돌이켜 보면, 나의 숱한 상처들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의 죄악이 피운 꽃이었다.
개중에는 억울하게 생긴 것들도 있기는 하나,
그것조차 악의 연대로 인하여 발생한 일이니
누구를 비난할 입장 같은 것이 내게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꺾이지 않은 꽃은 없었다.
어미이자 치료자이신 하나님께서
깊은 탄식으로 하나, 둘,
시간을 발라 어루만지심으로 셋, 넷 상처를
기어이 낫게 해주셨던 것이다!
#3. 하나님의 약손, 시간
인터넷을 뒤져보니,
하진군의 증상은 <장미색 비강증>과 가장 흡사했다.
그것은 특별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진으로
일종의 피부 감기 같은 것이다.
주로 봄, 가을 환절기에 많이 발생하며,
면역력과 연관 되어있으며,
시간(한 달에서 세 달)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치유가 된다고 했다.
훌쩍거리며 열흘이 지나갔다.
과연 장미들은 결국 시들어 버렸고,
가뭇해진 하진군의 피부는 늦가을 들판처럼
하얀 눈이 내리길 고대하고 있다.
상처를 딛고 돋아날 새 살을 고대하고 있다.
그를 낫게 한 것은
알레르기 알약과 연고는 아니었다.
하나님의 약손, 곧 시간의 어루만짐으로
아들은 회복되는 중이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손을 목격하는 중이다.
소망 중의 견딤으로.
#Oct. 22. 2018.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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