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作別)
“하영양이 대학가면, 나는 하영양 따라가서 같이 살 거야.”
아마도 하영양이 중학생이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런 공공연한 말을 흘리고 다녔던 것은.
그러다 최근,
거리낌 없이 했던 말들이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하영양이 대학교에 입학하였음에도
그녀와 함께 살 수 없었던 것이다.
내뱉은 말대로 하고자 지금껏 타고 있던
군함의 거룻배에 몸을 실으려 애를 쓰기도 했었다.
그러나 거룻배를 탄 것은 오직 그녀뿐이었고,
이윽고 잘려버린 거룻줄 앞에서 나는
허풍쟁이일 뿐이었다.
작별을 위해서 그녀와 함께 먼 길을 떠났다.
독일 프랑크프루트를 거쳐
미국 워싱턴 D.C.에 도착한 후,
곧 바로 메릴랜드로 가서 며칠 숨을 골랐다.
우리는 무더위와 함께
링컨 메모리얼 파크를 돌아다녔고,
자유의 여신상을 올려다보느라
뻐근해진 서로의 목을 주물러 주었다.
그 후 이틀에 걸쳐 몇 개의 주를 횡단한 끝에
미시건주 그랜드래피즈에 도착했다.
우리는 작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어줄 곳에 며칠 머물면서,
하영양이 누빌 대학 캠퍼스와
동네를 두루 다니면서
기도를 뿌리며 축복했다.
그녀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소망을
그 땅에 살포시 묻어두었다.
이윽고 작별 의식의 마지막 순서가 도착했다.
우리는 동네 북 카페에 마주 앉았다.
남편이 손수 만들고,
나와 하진군이 합세하여 완성한 카드가
하영양에게 전해졌고,
그녀의 영혼이 흠뻑 젖을 만큼의
축복의 말들을 쏟아냈으며,
우리 모두의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게 작별이 완성된 곳에 하영양은 남았고,
하영양이 빠진 또 다른 우리는 왔던 길로 되돌아왔다.
조금은 길었던 작별 의식은 큰 의미가 있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그녀를 떠나보냈다.
동시에 그녀 또한 우리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우리를 떠나온 그녀를 우리 또한 떠나왔다.
그렇게 우리들의 작별은 떠나보냄과
떠나옴이 뒤죽박죽 섞인 채,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를 떠나보내고
떠나온 것이 아닌,
서로를 떠나보내고 떠나오게 했던 것이다.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놓거늘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행 27:30-32)
작별의 여정 중에 그분이 말씀을 보내오셨다.
‘거룻배의 줄을 끊어 떼어버리라’
말씀에 순종한 그 새벽,
나는 저 멀리 홀로 떠나가는 거룻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만일 사공들이 그 배를 탔다면,
큰 배에 남아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공들 또한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직감이 몰려들었다.
그 배에 오르지 않고 뒤에 남아있게 된 것이
오히려 은혜라는 생각에 코끝이 찡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 저만치 떠나가는 거룻배가
위태롭고도 외로워 보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간간히 눈물을 훔쳤던 남편을
이해 못 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울지 않았다.
울지 않는 이유를 묻는 하진군에게
아빠가 선수를 쳤기 때문이라고
우스꽝스러운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나는 올챙잇적 시절을 기억하는 편이다.
나 또한 그 시절을 지나왔기에
처음 독립하여 맞는 대학생활 앞에서
하영양이 가질 법한 마음이 헤아려졌다.
작별의 아픔보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고양되어 있을 그녀였다.
그런 딸에게 부모의 눈물 일색은
부담이나 가책을 줄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부모가 기쁨 일색으로
신나게 보내주는 것 또한
서운함과 섭섭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남편의 눈물이면 충분했다.
한쪽의 서글픈 눈물과 한쪽의 의연한 미소는
독립하는 자녀에게 보일 수 있는 부모의 선물일 터였다.
거룻배를 떼어내고
선교라는 거대한 군함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곧 그것이 상실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없을 때,
비로소 흠씬 울 것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때를 따라 필연적으로 맺힐 수밖에 없는 상실감을
그 분 안에서 다루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이윽고 때가 되었다!
지금 나는 흐느껴 울고 있는 중이다.
그 동안 기쁨과 슬픔, 고통과 위로,
낙심과 격려가 되어 주었던 아이를 상실했다는 이유로.
이제 더 이상 그 아이와 살을 부비며
함께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이유로.
그리고 18년 동안 아이와 함께 살 수 있었던
은혜를 주신 그분에 대한 감사로 뒤범벅되어.
다시 돌아온 키예프에 더 이상 그녀는 없다.
이제 우리의 현실은 문자 그대로 분리(分離)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떠난 자나 남은 자나
분리로 인한 불안이 없다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몇 차례 짧은 분리를 경험했던 까닭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사이의 돈독한 관계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그녀는 군함을 뒤로 한 채
자기만의 항로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중에도 군함에는 그녀가 머물다간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녀의 손때가 묻어 있는 물건과 옷가지들,
읽던 책들, 그리고 낡은 노트북까지.
그것들의 자리를 마련해주면서 나는 소망해 본다.
서로 기필코 강건하기를.
성령의 교통하심 속에서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를.
그리고 다시 만날 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서로를 흠뻑 즐거워할 수 있기를!
Aug. 22. 2018.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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