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

The Blondest Asian from Africa

창고지기들 2018. 6. 12. 18:24







The Blondest Asian from Africa




#1.


“네가 그 애구나!”


미세스 아이담이 하영양에게 

사적으로 말을 걸었던 곳은 런던이었습니다. 

졸업 여행 인솔 차 

역사 선생님이었던 남편을 따라 나선 그녀였습니다. 

하영양은 영문을 몰라 그녀를 멀뚱히 쳐다보았고,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남편이 학교에서 돌아와서 그러더라고. 

이번에 새로 온 12학년 학생이 하나 있는데, 

외모는 완전히 동양인인데 

입을 열자 완벽한 캘리포니아 소녀로 변신했다고. 

굉장히 재밌어 하더라.”











#2.


얼마 전, 하영양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미국에서의 프리스쿨, 킨더가르텐, 초등학교를 거쳐, 

케냐에서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시 미국에서의 고등학교(11th), 

그리고 마침내 우크라이나에서의 고등학교(12th)를 

끝으로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었던 것입니다. 

대륙과 나라를 넘나들던 큼직한 전학과 더불어, 

잦은 이사로 미국에서만도 6개의 학교를 

번갈아 다녀야했던 하영양. 


그런 그녀를 생각할 때마 코끝이 찡해집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동네 친구나 

소꿉동무를 몹시 부러워하는 그녀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만으로 점철 된 일이나 

혹은 행복 일색의 일이 어디 흔하던가요? 

열여덟 살 그녀도 예외는 아니어서 

비록 안정감 속에서 오랜 시간 사귄 친구는 없어도, 

모험 중에 만난 다채로운 친구들은 꽤나 되는 것입니다. 

한국, 미국, 케냐, 마다가스카르, 남아프리카,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친구들과 

그녀는 지금도 종종 연락을 하곤 합니다. 


그렇게 숱한 모험을 뚫고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지금, 

그녀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I am The Blondest Asian from Africa!”











#3.


“글로리아는 누굴 닮아서 저렇게 끼가 많아요?”


무대에서 청중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능숙하게 사회를 진행했던 하영양. 

나서길 꺼려하는 동양인 특유의 행동에 반하는 

그녀의 모습을 놀라워하며 한 학부모가 물었습니다. 

저는 그냥 피식 웃어넘길 뿐이었습니다. 

그것이 끼의 결과가 아니라 

눈물 젖은 고군분투의 열매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탓이었습니다.


킨더가르텐 시절, 

하영양은 인종차별을 경험했습니다. 

추수감사절 학교 행사 때에 담임선생님에게 

인디언이 아니라 필그림(Pilgrim) 역할을 맡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을 당했던 것입니다. 

거절의 이유는 그녀가 동양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어린 하영양은 이 일을 저에게 말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 후로 그녀는 걸리 걸(girlie girl)에서 

톰보이(tomboy)로 전향했고, 

금발로 염색해달라고 몇 번 졸라댔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녀의 자존감은 지속적으로 하향 편향 가도를 달렸습니다. 

소심하게 주변으로 물러서는 

판에 박힌 동양인 소녀의 꼴을 뒤집어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태어나서 꼬박 1년을 알 수 없는 이유로 

힘차게 울기만을 고집하던 아기가 그녀였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태생적으로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를 명백하게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부류였던 것입니다.


자신을 잃고 방황하던 동양인 어린 소녀에게 

이윽고 그분의 때가 이르렀습니다. 

치유와 회복이 그녀에게 파고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의 말씀과 묵상과 기도 

그리고 전쟁 같았던 저와의 대화들을 통해, 

그녀는 두려움과 적면 대결할 때만 태어나는 

용기 하나를 품에 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그녀는 용기를 꾸준히 키워갔고, 

결국은 ‘끼 많은 아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미지의 아프리카에서 온 

주목받는 금발 같은 동양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4.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계 7:9-10)


졸업 전, 시니어 세미나 톡(Senior Seminar Talk) 시간에 

하영양은 계시록 말씀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대륙을 넘나들며 학교를 숱하게 옮기며 

살아온 날들은 몹시 힘들었지만, 

그것을 통해 가장 귀중한 것을 경험했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장차 경험하게 될 완전한 예배, 

곧 다양한 열방들이 함께 모여 어린양을 경배하는 일을 

이 땅에서 미리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고백은 부모로서 미안하기만 했던 마음을 

감사로 바꿔주었습니다. 

너덜너덜하게만 보이던 그녀의 학창시절의 여정이 

어느새 색감이 뛰어난 독특한 테피스트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신 주님께 영광을!










#5.


“불안함이나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훨씬 커.”


얼마 전 하영양과 대화했을 때, 그녀가 말했습니다. 

불안하기는 대학, 그것도 이역만리 떨어진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는 당사자 보다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가 더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영양의 말은 퍽 안심을 시켜주었습니다. 


물리적으로 함께 했던 

우리들의 여정이 이제는 끝나려합니다. 

이제부터 그녀는 그녀의 모험을, 

우리는 우리의 모험을 떠나야 합니다. 

더 이상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안타까움 보다는 소망하는 마음이 큽니다. 

그분이 변함없이 우리 모두와 따로 또 같이 

동행해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비록 다른 길로 걸어가지만, 

우리들의 목적지는 하나입니다. 그분! 

오직 그분을 향해 걸어가고 있기에 

우리는 잠시 헤어져도, 결국 그 곳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과 함께 했던 

그간의 모험담을 자랑하듯 한껏 쏟아내겠지요. 

그 때를 빙그레 소망하면서 하영양을 축복해 봅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가장 금발다운 너 동양인 하영아!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의 축복이 너에게 가득하라! 

사자처럼 네 기업을 거침없이 차지하며, 

어린양같이 네 기업으로 이웃을 풍성케 하라! 

네 안의 온유한 다양성으로 

사람들 간의 화목을 이루어 안팎으로 즐거워하여라! 

그리하여 세상이 절대로 빼앗을 수 없는 

구원의 평안을 날마다 누리 거라! 

이름 값 그대로, 큰집을 영화롭게(廈榮)하는 딸로서 

그분을 기뻐함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라! 





#Jun. 11. 2018.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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