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기타로 영화롭게 하기
지금까지 4대의 기타를 잃었다.
대륙을 넘나드는 이사 때문이었다.
손에 쥘 때는 꼬박꼬박 돈을 지불했으나,
넘겨줄 땐 거저 주었다.
그러고 보니 밑지는 장사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다.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말씀대로 일진대 나는 얼마나 복이 있는지! ㅎ~
안식년을 시작할 때였다.
공짜 기타 한 대가 기다렸다는 듯이
품 안으로 냉큼 들어왔다.
안고 보니 녀석은 싸구려였다.
일전에 기타 피크를 사기 위해 기타 센터에 갔을 때,
그곳에서 녀석과 똑같이 생긴 것들이
저렴하게 팔리는 것을 보았다.
초보를 위한 연습용 기타.
그래도 상관없었다.
케냐에서 두 대의 기타를 무상으로 넘긴 탓에
헛헛해진 마음은 막 기타라도
마다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어디 공짜가 있겠는가!
거저 안은 기타에 대한 값은
이후로 야무지게 청구되었다.
처음엔 매달 첫 번째 주
심야기도회에서 찬양 인도를 해야 했다.
그러다가 매주 목요일 오전
기도모임의 찬양 인도까지 맡게 되었다.
공짜 기타 뒤에 한 달에 다섯 번 이상의
찬양 인도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시작할 때의 마음은 감사와 기쁨이었다.
그러나 잠시 뿐이었다.
머지않아 마음의 손가락은
부담감을 수시로 쿡쿡 찔러댔다.
‘쳇! 안식년에 또 다시 사역에 묶이다니!’
의지를 발굴할 때가 된 것이었다.
기쁨과 감사로 시작했던 일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제 아무리 버거운 일이라도
그분과 공동체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마음은 의지를 내세워 헌신을 두르고
버틸 태세를 갖춰야 한다.
그렇게 견디다 보면
다시 감사와 기쁨이 회복이 되는 것이
그 일의 특징이다.
경험상으로 그렇다.
헌신으로 마음의 허리띠를 동여매자마자
이기심의 저항이 불 일 듯 일어났다.
‘안식년이라며?
그것이 <멈춤>을 전제로 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
찬양 인도는 명백한 위반이라고!’
싸구려 기타를 안고서 각고로 찬양과 기도에 힘쓸수록
저항 지수는 매번 상한가를 갱신했다.
정신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라는 주장이 사방에서 빗발쳤다.
목소리 큰 놈은 마치 자신이 진리나 되는 듯
나를 정죄하면서 거만하게 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제 아무리 드세게 굴어도
뿌리 없는 거짓말은 오래 버틸 수 없는 법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제1번 정답은 이렇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먼 훗날의 이 교리를 예수께서도 살아내셨다.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간 예수의 삶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아버지가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는(finishing) 것이다.
그렇게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계시하셨고,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셨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는
그리스도인에게 제일 가는 가치다.
존재론적 입장에서 그것은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 성취된다.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행위론적 측면에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마칠 때 실현된다.
이런 맥락에서 안식은 멈춤이라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집중해서 즐거워하는 것이다.
즉, 안식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수많은 방식들 중 하나인 것이다.
안식이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냐?
선택은 나의 몫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안식주의자가 아니다.
그리고 상위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
지혜롭다는 것쯤은 아는 먹물이기도 하다.
문제는 찬양 인도가
그분이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인지를 판단하는 것인데,
공짜 기타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일전에 샀던 기타 피크 한 묶음을 언제 다 쓰나? 했는데,
지금 보니 몇 개 남지 않았다.
격렬한(?!) 나의 스트로크 주법으로
다량의 피크가 나가떨어지고 만 것이다.ㅋ~
안식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는다.
아버지께서 이 곳에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최선을 다해 마치기로 한다.
나머지 피크들을 아낌없이 날려버리기로 다짐한다.
#Apr. 17. 2016.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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