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靑出於藍) 즐거워하기
그런 점에서 꽤 쓸쓸한 인생이다.
존경심을 가지고
따를 만한 스승이나 선배가 거의 없는 것이다.
굳이 꼽자면 책을 통해 만난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전부다.
난치병인 교만도 한 몫을 했겠지만,
청출어람(靑出於藍)을
즐거워하는 선생(先生)도 없었다.
수중에 자신보다 더 푸를 것 같은 싹이 보이면
냉큼 잘라버리거나 슬쩍 유기(遺棄)하는 것이
나의 스승이요, 선배였던 것이다.
경쟁을 거름 삼은 토양에서 자랐으니,
그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스승이나 선배가 없으니
제자나 후배도 있을 리 만무하다.
쓸쓸한 인생은
기어코 자기를 실현시킬 모양이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요 1:19-29)
그 시절, 빈들의 요한은 눈부셨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활짝 만개했던 것이다.
봄날의 흐드러진 사쿠라 같았던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라고 불렀다.
입소문이 무성해지자
급기야 예루살렘의 유대 총회는 사람을 파견했다.
그가 오실 그분,
곧 그리스도가 아닌지 의혹을 품었던 것이다.
사쿠라는 단호했다.
자신은 꽃일 뿐, 열매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 뒤로도 벚꽃은 한동안 예뻤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한동안이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변할 수 없는 이치(理致)인 까닭이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요 1:35-37)
하나 둘 떨어지는 꽃비는 슬프고도 어여쁘다.
빈들의 사쿠라가 떨어뜨리는 꽃잎도 그랬다.
그러나 주인공 열매가 등장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그것은 분분함을 넘어서서
와르르 무너지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떨어져 나간 꽃잎의 자리마다 상실감이 파고들었다.
세례 요한의 깊은 눈에 격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슬픔과 기쁨, 탄식과 감격, 불평과 감사,
섭섭함과 시원함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그는 질끈 눈을 감았다.
침묵 속에 자신을 두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방치가 아닌 의도적인 정주(定住)였다.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요 3:26)
세례를 받고 싶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광야가
다시 원래의 빈들로 돌아누웠다.
꽃잎을 죄다 잃은 세례 요한은
고요히 빈 꽃받침을 정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제자들은 노래나 흥얼거리면서 산책이나 하는
속도 없는 스승이 못마땅했다.
자기 스승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예수께서
신흥 세례자로 각광을 받고 있던 터였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29-30)
사람들이 예수님만 찾는다는 제자들의 토로에
세례 요한은 얼굴에 꽃을 피웠다.
떨어진 꽃이 열매를, 선생이 제자를,
쪽이 푸른 물감을 기뻐했던 것이다.
제자들은 어리둥절했다.
계속해서 그를 따라야할지 망설여졌다.
그들은 제 스승이 상실의 슬픔을 재료로
성숙을 창조한 명장(名匠)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낙화(洛花)/ 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개인적으로 가야할 때를
분명히 알고 떠났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사역을 사직하고 떠나야 했던 것이다.
꽃답게 죽었던 자리에
다른 어여쁜 것들이 새롭게 핌은 물론이다.
떨어진 꽃잎이 제 있던 자리를
다시 찾아보는 것은 언제나 어리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보 같은 일은 언제든지 벌어진다.
지나간 자의 눈에 새로운 것들은 늘 연두 색깔이다.
사뿐하고, 싱그럽고, 경쾌하고, 호들갑스럽다.
그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사랑스럽고,
슬픈 눈물조차 아름답다.
과거에서 걸어 나와서
잠시 그들의 현재에 머물다 가는 자의 마음은 헛헛하다.
주머니에 챙긴 기념품도 고작 해야 <자기연민>이다.
기념품을 멀리 내동댕이치면서
지나가는 자는 혼잣말을 한다.
자기연민은 질투와 시기의 페르소나일 뿐이라고.
다시 땅바닥에 널브러진 지 오래다.
바닥에 누워 여전히 아름답게 흔들리고 있을
높은 곳의 그들을 떠올려 본다.
과거 그 곳에 있었을 적 나는
얼마나 어설프고도 오만했던가!
문득 야무지게 훌쩍 커있는 그들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다 더 새 파란 물감들이 흐믓해진다. 흐음~
#Jan. 20. 2017 사진 & 글 by 이.상.예.
'그 여자의 보물창고 >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티의 경비(經費) (0) | 2017.02.12 |
---|---|
다혈질과 결혼한 우울질 (0) | 2017.02.04 |
아귀까지 채우니 (0) | 2017.01.14 |
바람에 나는 겨 (0) | 2016.12.20 |
젖먹이들의 입 (0) | 2016.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