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부리 영감, 다윗
옛날 어느 마을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흉측하게 생긴 기다란 혹을 턱에 달고 있었던 탓에
사람들은 그를 ‘혹부리 영감’이라고 불렀다.
혹 때문에 한 평생 놀림을 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는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에게 요상한 일이 일어났다.
도깨비 앞에서 노래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도깨비는 그의 멋들어진 노랫소리에
단번에 매료되었고, 비결을 물었다.
그는 턱에 붙은 혹이 사실은 노래주머니라고 둘러댔다.
도깨비는 혹을 떼어 갖는 조건으로 그에게 비싼 값을 지불했다.
엉뚱하게도 노년의 다윗을 상상할 때면 혹부리 영감이 떠오른다.
‘혹’이라는 그들 간의 교집합 때문일 것이다.
혹부리 영감처럼 다윗도 애물단지인 혹을 평생 달고 살아야 했다.
유진 피터슨은 다윗의 혹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는 전형적인 억세고 거친 사람이다.
그는 일단 죽이고 나서 나중에 생각한다.
또한 그는 소위 이상주의자(idealogue)다.
즉, 자신이 보기에 옳은 이상을 위해서라면
앞 뒤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
이상주의는 실상 이런 태도다.
“당신이 내 이상에 반대할 경우,
나는 이상을 위해 당신을 제거해 버릴 수 있소.
정당한 방법이건 비열한 방법이건 가라지 않고 말이오.”
불같은 성미와 독단주의와 완력의 결합은 치명적 결과를 낳았다.
그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폭력을
초월적으로 합리화시켜 주는 존재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는 다윗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단지 다윗이 자기의 일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종교는 자신의 야망을 가리는 가면일 뿐이었다.
그는 우리가 사랑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찬양하는 순종 안에서 순조롭고 느긋하게 사는 것을
너무도 어렵게 만드는 사람이다.
-유진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중에서
열조들에로 돌아가기 전, 다윗은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겼다.
그 중에는 고통스럽게 평생 달고 살아야했던
혹에 대한 처분도 있었다.
다윗의 턱에 붙어 있던 혹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었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에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열왕기상 2:5-6)
다윗이 다스렸던 이스라엘은 이상적인 나라가 아니었다.
그곳은 지극히 현실적인 나라였다.
사회, 정치적으로 기회주의와 비열한 난투가 범람했고,
문화적으로 거짓말과 조작이 난무했으며,
종교적으로 폭력과 합리화가 들끓었다.
즉, 그 나라는 스루야의 아들 요압 같은 이들이
권세를 틀어쥔 채 왕을 겁박하고, 백성을 압제하는 곳이었다.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이는 것은 다윗의 뜻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요압은 그들을 죽였다.
개인적인 원수를 갚기 위해서,
그리고 군대 사령관이라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는 왕의 뜻을 가볍게 어겼다.
그리고는 그 모든 것이 왕을 위한 일이었다고 포장했다.
다윗은 몹시 마음이 상했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그를 건드릴 수는 없었다.
그를 적으로 돌리는 순간,
이스라엘이 맞게 될 파국을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별 수 없이 다윗은 요압을 곁에 두었다.
자기 야망을 왕의 뜻인 양 위장하는 혹,
요압을 평생 달고 살았다.
그러나 한 번도 잊은 적은 없었다.
그 혹이 제거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다윗은 제 손으로 뗄 수 없었던 혹을 아들 솔로몬에게 부탁했다.
그것을 반드시 떼어내라는 유지(遺志)를 남겼다.
솔로몬은 아비의 뜻을 성실하게 받들었다.
요압이 살아남기 위해서 제단 뿔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기어이 요압을 끌어내어 제거했던 것이다.
단칼에 혹이 땅에 떨어졌다.
한 평생 선왕을 괴롭혔던 관계가 청산되자,
비로소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도로 풍경이
이곳 케냐에서는 펼쳐진다.
도로를 점거한 소떼와 자동차와 경주(?)하는 낙타가 그것이다.
이곳에서 낙타는 당나귀처럼 실제 운송 수단이다.
볼록한 두 개의 혹 위에 사람을 얹고
긴 다리로 느긋하게 걸어가는 낙타는 우아하면서도 애처롭다.
때로 나는 메타포를 둘러쓰고 낙타가 되기도 한다.
등에 혹을 업고 오래도록 걷는 나는 낙타다.
내 손으로는 떼어 버릴 수 없는 혹을 달고
주인이 인도하는 대로 주어진 길을 걷는다.
혹을 떼어내면 조금 쉬울 것도 같은데,
주인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이야기를 해준다.
“영양소와 물을 저장해 두는 곳이 혹이란다.
오래 먹거나 마시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혹 때문이지. 그러니 힘들더라도 달고 가자.”
곁에 함께 걷고 있던 동료(!) 파커 팔머가 주인을 거들며 말한다.
“참된 공동체란 같이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늘 곁에 있는 곳으로 정의할 수 있지.”
그러고 보니, 다윗이 권력을 손에 쥔 왕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했던 것은 ‘혹’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괴롭히는 혹 때문에
그는 마지막까지 겸손하게 그 분의 말씀을 피난처로 삼았을 것이다.
혹부리 영감처럼 다윗도 노래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다윗이 떠난 자리에는 노래(시편)가 수두룩하게 남아있다.
혹이 사실은 노래주머니였다는 혹부리 영감의 말이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나 보다. 흐음.
#Apr. 19. 2015.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