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집을 생각한다

창고지기들 2015. 2. 21. 16:33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책, 「집을 생각한다」를 읽고

 

 


결혼생활 20년 동안 13번 이사했다.

그 중 두 번은 대륙을 넘는 해외 이사였다.

집과의 잦은 만남과 헤어짐 탓에 병이 생겼다.

한 집과 2년 쯤 사귀고 나면

다른 집을 만나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병이었다.

나는 그것에 ‘집 편력증’이라는 병명을 붙여주었다.

얼마 전 또 한 차례 병치레를 했다.

2년 월세 계약이 만료될 때 즈음,

고레스 같이 인심 좋은 집주인 때문에

계약을 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애인(집)을 만나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몰랐던 것이다.

병치레를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여느 바람둥이들처럼

나 역시 연애 상대인 집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책에 손을 댄 것은 그 때문이었다.

어느새 고여 든 집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읽은 책은

무거운 값에 비해 컵라면처럼 가벼웠다.

 


사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집의 내부 공간에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 주어진 공간을 편안하고도 편리하게 분할하고,

창의적으로 물건을 깔끔하게 수납 정리하고,

미적인 취향을 담아낼 공간을 그려내고,

깨끗이 청소하는 일 등에 관심이 지대하다.

그러니 가구, 수납 용품, 인테리어 소품, 그림,

청소 도구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편중된 관심은

여자의 긴 머리나 늘씬한 다리만 보고 좋아하는

어린 소년과 다를 게 없다.

이런 내게 집에 관한한 고수인 저자는 권유한다.

집이라는 언어에 대해, 건물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점하고 있는 풍경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라고.

 


집의 내부 공간과 관련해서

저자는 몇 가지 들을만한 이야기를 해준다.

먼저, 부엌의 어수선함을 수납과 정리의 실패라고 보지 말고

자연스럽고 활기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조언이다.

유독 부엌에서 왕성한 엔트로피 법칙과 맞서 싸우느라

고군분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엔트로피와 맞서는 대신에

그것을 활기참과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부엌의 어수선함을 즐거워하자!

 


두 번째는 공간 창조에 위트를 더해 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공간을 실용적 관점에서 만들어왔다.

(작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실용성은 가장 큰 덕목일 것이다!)

그래서 비실용적인 공간을 최소화는 것에 최선을 다해왔다.

그러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애매한 공간은 늘 집 한 칸을 버젓이 차지하여

한숨을 짓게 하곤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애매한 공간을 없애려는 노력은

실용주의 영향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애매함이 일으키는 불확정성, 불분명성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애매한 공간을 허용하고,

상황에 따라 그것을 재미있는 공간으로

위트 있게 구성해 보라고 조언한다.

애매함이라는 불편함을 상상력을 통해

재미와 위트로 창조해보라는 말이다.

그렇게 나는 불확정, 불명확, 불확실, 불분명의 땅, 케냐에서

애매한 공간을 받아 새롭게 창조하는 일을 배워 가기로 한다. 

 


세 번째는 도코노마를 마련하여

집에 마음의 풍경을 담아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도코노마를 마련해 본 일은 없으나,

책장이나 서랍장 위에 나름대로의 콜렉션(?!)을

디스플레이 하면서 살아왔던 탓에

도코노마를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없던 공간을 의도적으로 창조하는 일이니 만큼

미적 취향에 좀 더 민감해질 필요는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집의 중심에는 불이 있어야 하며,

조명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조언 덕분에

부엌에 있는 가스레인지 불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불에 대한 묵상이 새롭게 시작될 판인 것이다.

더불어 마음에 둔 일이 없었던 조명에 대해서도

의도적으로 골똘해질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집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모세가 지었던 성막을 떠올린다.

미니멀한 살림도구와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충만했던

그 분의 집을 떠올린다.

그래서 집은 늘 내게 예배하는 장소와 연결된다.

집.

그곳은 그 분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머무는 연합을 경험하는 곳이다.

집에서 그 분과 나는 우리가 되어 서로 단란해진다.

투명한 영원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집에서 서로 깊어지고, 사랑스러워져 간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집을 알아가는 여정의 첫 발판이었다.

이제 여정이 시작되었으니

집에 관한 좋은 책들을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마친다.

 

 


#Feb. 21. 2015.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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