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경건한 칭찬

창고지기들 2014. 8. 20. 17:16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마가복음 12:15)

 

 


그들을 뒤따라가는 것은 그림자가 아니라 꿍꿍이였다.

그들은 떠들썩하게 이혼한 스타 부부와 같았다.

이쪽은 저쪽을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는 파렴치한이라고 매도했고,

저쪽은 이쪽을 세상 물정 모르고

신선 노름이나 하는 얼뜨기라고 폄하하길 즐겼다.

서로에게 사정을 두지 않는 탓에

그들은 수레바퀴의 궤적처럼 평행선으로 일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상한 일이 발생했다.

그들, 경건파와 세속파가 느닷없이 결탁하여

지란지교 흉내까지 내며,

사이좋게 성전을 향해 걸었던 거였다.

 


성전 초입에 있는 이방인의 뜰에 도착했을 때,

한 귀퉁이에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려있었다.

그들은 양파껍질처럼 여러 겹의 열들로 늘어서서

한 사람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였다.

앙숙인 그들로 잠시 동맹을 맺게 한 장본인, 예수.

그를 없앨 결정적인 말실수만 찾는다면(마가복음 12:13)

다시 깨끗이 갈라서게 될 터였다.


 

갑자기 군중 속에서 커다란 폭소가 터져 나왔다.

‘서기관들의 입을 다물게 할 만큼 입담이 좋다고 하더니만,

천박한 말재주로 사람들의 인기나 얻으려는 모양이군.’

경건파 바리새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양파껍질들을 차례로 뚫고 나아갔다.

‘대제사장들의 눈 밖에 났는데도 저렇게 웃고만 있다니,

처세를 모르는 풋내기로군.

생각보다 일이 싱겁게 끝나겠는 걸.’

세속파 헤롯당원이 혀를 끌끌 차며 바리새인의 뒤를 따랐다.

웃음소리가 수그러들 때 즈음,

바리새인이 선수를 치며 예수께 말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거리끼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마가복음 12:14)

 

‘이정도 띄워주었으면 우쭐하지 않곤 못 베기겠지?

우쭐하면 망발하기도 쉬운 법이니까.’

바리새인이 머리를 굴리고 있는 사이에

헤롯당원이 이어서 예수께 물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마가복음 12:14)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마가복음 12:15)

 

헤롯당원의 말을 가로채며 바리새인이 의뭉스럽게 질문했다.

예수께서는 칭찬하는 자들을 주목하셨다.

그의 눈에 칭찬 속의 악한 목적,

즉 그들의 외식(外飾)은(마가복음12:15) 냉큼 드러났다.

그런데도 뜸은 한참이나 더 들었다.

안달이 난 나는 결정적 순간에 끝난 드라마를 보며

아쉬운 탄성을 지르는 시청자처럼 볼멘소리를 했다.

'이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줄 쇼 타임인데,

왜 저렇게 꾸물거리신담.'

바로 그 때 예고편도 없이

그 분의 말씀이 화면을 뚫고 내게로 왔다.

 

“나는 네 입의 외식함도 알고 있다.”

 

얼굴에 붉은 백일홍 꽃물이 빠르게 퍼졌다.

갑작스런 일로 당황한 탓인지

아니면 숨기고 싶은 비밀을 들킨 탓인지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우선 당황스런 상황이나 모면해보려고

나는 태연한 척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제 입이 외식을 좋아하는 게 뭐 새삼스러운 일이라고요.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가 외식 좋아하는 거 다 알아요.”


“입의 외식이란 입으로 들어가는 외식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외식이다.”


“입에서 나오는 외식도 있어요?”


“타락한 칭찬!

상대로부터 얻고 싶은 것을 받아낼 속셈으로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하는 것이 네 입의 외식함이다.”

 


‘가의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다음 회의 명대사를 뒤로 한 채,

나는 그 분이 건넨 말씀에 집중했다.

가시처럼 잇몸에 박힌 말씀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침을 모아 한꺼번에 삼켜보기도 하고,

혀를 이용하여 살살 빼내려고도 했지만 헛수고였다.

마지못해 거울 앞에서

볼썽사납게 입을 벌리고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내 입은 가끔씩 마음에도 없는 타락한 칭찬을 하곤 했다.

그것도 이기적인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 말이다.

 

“어머, 음식이(좀 짜긴 하지만) 어쩜 이렇게 맛있어요.

(대~장금까지는 아니지만)장금이가 따로 없네요.

(그러니까 음식 좀 자주 해줘 봐요!)”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는 김에 저도 껴서)초대해주시니 정말 감사해요.

이렇게(별로 먹을 거는 없지만) 예쁜 상차림은 처음이에요.

정말 대단하세요.(그러니까 자주 초대해줘 봐요!)”

 

“오늘 (객관적으로는 아니지만 다른 날과 비교한다면) 예뻐요.

(당신도 만만치 않게 예뻐! 라고 나도 칭찬해줘 봐요!)”

 


부끄러운 손이 서둘러 거울을 치웠다.

그러나 말씀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더 깊은 반성을 위해 한동안 성가실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속설을 맹신한 탓에

칭찬을 무분별하게 남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춤추는 고래로 한 몫을 잡으려고,

고래에게 칭찬을 하는 것이 미덕일 수 없는데 말이다.

자신이 아닌 상대방의 유익을 위한 칭찬,

상대방의 원래 가치를 환기시키기 위한 칭찬,

나아가 상대방의 생명력을 북돋우는 경건한 칭찬이

본연의 칭찬인데 말이다.

반성하면서 자기 유익을 위한 타락한 칭찬을 발라내자,

준치 살 같은 경건한 칭찬이 드러났다.

 

“잘 했다, 충성된 종아!”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랬지!

경건한 칭찬을 먹고 내 영혼은

단단한 뼈와 탄탄한 근육을 갖게 되었지!

좋은 살을 먹고 가시를 뱉는 것이 더욱 마땅치 않아졌다.

그래서 요리에 자신 없어 하는 한 지체의 김치 맛을 본 후,

나는 조심스레 칭찬을 했다.

 

“김치가 정말 시원하게 맛있어요.

싸달라는 말은 절대 아니에요!”

 

 

#Agu. 20. 2014.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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