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He's calling you!

창고지기들 2014. 8. 13. 18:07

 

 

 


비대해진 이민 가방들을 하나씩 들어보았다.

한데 섞인 짐들이 만들어낸 중량감이 만만치 않았다.

기본 무게를 초과하면

별도로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할 텐데.

마음은 이민 가방 밑에 깔린채

며칠 동안 일어날 줄을 몰랐다.


그러다 여리고 같은

거대도시 서울을 떠나는 아침을 맞았다.

해질녘 아스팔트 위의 그림자처럼

길게 널브러져 있는 마음이 마뜩치 않았다.

먼 길을 떠나려면

바짝 다부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양손으로 녀석의 멱살을 잡아

바디매오 곁에 억지로 앉혀 놓고는

그와 함께 외쳤다.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Mark 10:47, NIV)

 

그러자 주님이 당신의 제자들을 보내 말씀하셨다.

 

“Cheer up! on your feet! He's calling you."

(Mark 10:50, NIV)

 

말씀이 임했다.

이제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겠거니 안도했다.

그러나 허망한 바람일 뿐이었다.

이민 가방 안에 들어있는

남편이 미국으로부터 가져온

낡은 살림살이들을 생각하자

녀석이 다시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던 것이다.

이년 반 전,

케냐로 미처 다 가져갈 수 없었던 짐들을

미국에 남겨두었었다.

기회가 생겨 미국을 방문한 남편은

그것들을 대부분 처분했고,

추억 때문에 정리할 수 없었던 것들은

케냐로 가져가기 위해 챙겨왔다.

처음에는 손 때 묻은 물건들이 반가웠다.

허나 반가움은 재빨리 휘발되었고,

소중했던 물건들은 근심스런 짐짝으로 변질되어버렸다.

저것들만 없었어도 한결 나았을 텐데.

볼멘소리를 할수록 마음은 엇나가기만 했다.

 

 

“Cheer up! on your feet! He's calling you."

 


못 들었어? 주님이 부르신다고 하잖아!

다시 마음을 말씀에 단단히 붙들어 맸다.

공항에 도착한 뒤,

뚱뚱한 짐들을 카트에 싣고 수화물 취급 장소로 향했다.

녀석들을 밀고가는 내내

나는 그들이 마치 나의 허물처럼 느껴져서 부끄러웠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 마련이라는 말은

그 때만큼은 거짓이었다.

나의 짐들은 그 누구의 것보다 크게 느껴졌고,

심지어 짐들을 올려놓아야 하는 저울 앞에서는

심판대 앞에 선 것인 양 떨리기까지 했다.

하나, 둘, 셋, 넷.

저울이 짐들을 숫자로 치환하자,

마음이 슬슬 가분해지기 시작했다.

짐들의 무게가 대중했던 것보다 가벼웠던 것이다.

게다가 친절한 직원 분 덕분에

모든 짐들을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할렐루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꾸준히 완고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감사는 승객의 가방을 제멋대로 열어 검사하는

케냐의 검시관을 떠올리며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그들은 반드시 꼬투리를 잡고야말겠다는

예수님 앞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매서운 눈초리와 꼬장꼬장한 자세로

가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물은 뒤,

가방을 열어 이것저것 뒤져보면서

이것은 무엇이냐,

이 물건은 어디에 쓰는 것이냐는 등을

캐묻는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종종

추행을 당하는 느낌을 받곤했었다.


나이로비에 떨어진 나는

정신없이 짐들을 카트에 실었다.

코너를 돌면 검시관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카트를 쥔 손에서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코너에 도달하자 검시관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자동반사로 검사를 받기 위해 그들 앞으로 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들 중 누구도

우리를 불러 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거치는 것 하나 없이

거대한 짐들을 데리고

케냐 공항을 말 그대로 직행으로 빠져나왔다.

이게 웬일이야!

환호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The People let them go.

(Mark 11:6,NIV)

 

 

나귀 새끼를 풀어 유유히 끌고 온 제자들처럼

우리는 짐들을 유유히 끌고 나왔다.

그렇게 짐들이 무사히 집에 도착했을 때,

그것들은 어느새 한낱 짐짝에서

주께서 쓰시는 것으로 변해 있었다.

허름한 살림살이, 옷가지, 책, 식료품 등이

주께서 쓰시는 것이라니.

비로소 마음이 물러지기 시작했다.

 

 

긴 방학이 끝났다.

다시 학교에 다녀야하는 아이들은

잊지도 않고 똑같은 타령을 한다.

학교 가기 싫어~

타령에 대한 나의 화답은 이것이다.

아~ 의미 없다! ㅋ~

 


어쩌면 서울을 떠나기 전의 나의 마음과

아이들이 타령하는 마음은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긴 방학을 끝내고 케냐라는 학교에 가기 싫어서

마음이 자꾸 골을 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어이 그 분은 나를 부르셨다.

어두운 눈을 바디매오처럼 뜨게 하고,

딱딱한 마음을 부드럽게 기경하기 위해서 말이다.


 

"He's calling you! Cheer up!"

 


 

 


#Aug. 13. 2014.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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