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7년의 밤 고래

창고지기들 2014. 3. 21. 12:52

 

 

 

#1. ‘7년의 밤’과 ‘고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베토벤과 모차르트,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마일스 데이비스와 쳇 베이커...

 

 

사람들은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이는 서로 기대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사람(人)됨의 자연스러운 발로일지 모른다.

 

최근에 읽은 소설

‘7년의 밤’과 ‘고래’도

비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구미를

자극할 만 한 레퍼토리다.

처음 이 두 권을

비교하여 소개시켜 준 것은

책을 다루는 한 팟캐스트(Podcast)였다.

덕분에 나는

‘7년의 밤’과 ‘고래’라는

서로 다른 앙꼬를 가진

한국 현대 문학계의 막 쪄낸 찐빵을 맛보면서

각각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느낄 수 있었다.

 


 

 

 

 

 

 

#2. 고래

 

 

고래의 저자 천명관은

입이 족히 세 개는 넘는 것 같다.

그는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면서

언어와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

말이면 다 말이 되는

구어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독자 여러분은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된다. 그뿐이다.’

 

 

저자는 이야기 중간 중간에

갑자기 튀어나와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다.

내 이야기는 가감과 변형이 있으니

믿고 싶은 대로 믿어도 된다고 말이다.

저자가 이토록 자유분방하게

말할 수(쓴 게 아니라) 있었던 것은

이야기와 청자를 통제하고자 하는

작가적 욕망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고래는 땅의 얘기들로 가득하다.

판타지가 독특한 소설적 마블링을

만들어 내고는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땅의 얘기를

더욱 사실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판타지가 가미된 땅의 얘기들은

내 어미의 입을 통해 익히 들어왔던

뽕끼가 좌르르한 인간의 얘기다.

얕고, 상스럽고, 어그러지고,

뒤죽박죽 순수하지 못한 이야기들!

 

그 속에는 의외로(?!)

성경의 언어도 언뜻 들어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특유의 거룩성을 잃은 채

인간의 얘기를 위해 수종을 들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고래의 얘기는

신바람 나게 달려가지만

그 길 끝에는

허무하고 아련한 바람만 일다 이내 사라졌다.

구원의 실마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3. 7년의 밤

 

 

곧 영화화 된다는 소식으로 들썩이는

소설 ‘7년의 밤’ 저자 정유정은

대단한 언어 세공사다.

나무로 성냥개비를 만들어

질릴 정도로 정교한 모형을 만들었던

소설 속 등장인물 오영제는

어쩌면 저자를 가장 많이 닮은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3달 동안 2,000페이지로 쓴 소설을

2년 동안 500페이지로 줄이고 고치는 일을

저자는 성실히 감당했고,

그렇게 탄생한 그녀의 소설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매끈한 문체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진군하는 서사로

완벽에 가깝게 형상화되었다.

이정도면 장인 정신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여기까지다.

읽으면서, 혹은 읽은 뒤에

살포시 스며드는 감흥은

고래보다 훨씬 못한 게 사실이다.

얘기의 내용과

그것을 담아내는 언어에서

살 냄새가 아니라

병원 냄새가 진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4. ‘7년의 밤’과 ‘고래’와 ‘성경’

 

 

오랜 만에 찾은 친정 동네에

도서관이 하나 생겼다.

늘 책이 고픈 내겐 반가운 일이었다.

도서관에서

‘고래’와 ‘7년의 밤’을 빌려 읽었다.

그러나 두 소설은

목마른 조난자를 희롱하는

바닷물일 뿐이었다.

마시고 마셔도 해갈은 없었다.

 

 

아비를 떠나보내야 하는

고통스럽고 생경한 환경 속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이런 상황을 담아낼

언어와 상상력의 부재였다.

나는 세속주의 언어만이 난무하는

척박한 환경에 홀로 뚝 떨어졌고,

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맸다.

하는 수 없이

성경에 더욱 기대기는 했지만,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기도 외에

나는 그 어떤 언어나 상상력도 가질 수 없었다.

 

 

성경은 ‘고래’처럼

뽕끼 좌르르한 인간의 얘기들이 주류를 이루며,

‘7년의 밤’처럼

치열한 언어 세공자들의 문체와 장르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고래’처럼 마냥 상스럽거나 우울하지 않고,

‘7년의 밤’처럼 씨알도 안 먹힐 만큼의

촘촘한 장인 정신 일색만도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언어는 거룩하며,

비유가 만들어내는 언어적 공간이

하늘과 땅과 바다 보다 더 넓기 때문이다.

 

 

부정하고 싶으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나는 그것을 담아낼

그릇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고래’와 ‘7년의 밤’의

세속적 언어와 상상력이 아닌

거룩한 언어와 상상력으로 말이다.

 

 

키리에 엘레이손!

 

 

#Mar. 20. 2014.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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