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모님!
병이 어떻게 은혭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요!”
지병인 당뇨병을 통해
하나님과 더한 친밀함을 누렸던 관계로
병을 은혜라고 고백했던 게 화근이었다.
그는 철부지 학생을 나무라듯
나를 꾸짖었다.
그의 말을
꿀꺽 삼킨 나는 급체했고,
그와의 교제는
노루 꼬리보다도 짧게 끝나버렸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러나 그의 꾸지람은
아직도 마음 한 칸에서 욱신거리고 있다.
고난도 은혜라는 것을
그는 정말로 몰랐던 것일까?
#2.
이 책 ‘탐욕의 복음을 버려라’는
‘부와 건강과 번영의 신학’을
주장하는 무리의 허황됨을
드러내고 비판하려는 취지로,
이 문제와 관련해서 쓰인
저명한 신학자들의 소논문들을
한데 모아서 만든 편집물이다.
주제가 같다보니
반복되는 내용이 많아 지루한 감은 있으나,
주제에 대한 내용을
확실히 숙지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큰 단점은 아닐 듯싶다.
오래 전,
노예제도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대지주들을 위해
노예제도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신학을 설파하던 신학자들이 있었다.
대지주들의 성원으로
각광을 받았던 그 신학은
지금은 이론의 여지없는 이단일 뿐이다.
그 후로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부자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그리고 부자가 되고 싶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부와 건강과 번영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신학을 설파하는 무리가 나타났다.
이들은 부와 건강과 번영에는
하나의 원리가 있는데,
이것을 배워서 잘 운용하면
반드시 부와 건강과 번영을
얻을 수 있다고 선전한다.
이 때 하나님은
말을 잘 들으면 선물을 준다는
법칙의 창시자이시자,
부와 건강과 번영이라는 선물을 퍼주는
맘씨 좋은 산타할아버지 역할로 캐스팅 되신다.
우주의 원리를 운운하며
그것을 잘 운용해야 번영을 가질 수 있다는
이들의 주장은
뉴 에이지 주장과 일면 맞닿아 보인다.
시각주의를 골자로 하는
세속주의에 눈이 멀어
부와 건강과 번영을 지지해주는
성경의 본문을 선택적으로 골라내고,
그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자기 목회(주님의 목회가 아니라)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무리들은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설교자들과 성도들의 생각과 언어에도
이들의 신학이 교묘하게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즐겨 사용하던 단어인 Happy에
부와 건강과 번영의 신학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데이비드 라센은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보다는
거룩하게 하는데 관심을 두고 계신다.”
결국 나는
당분간 Happy를 내려놓기로 했다.
#3.
편집의 산물인 이 책의
몇몇 글들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논리와 비판에 주력한 나머지
언어 자체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부족하고,
깊은 신학적 묵상을 등한시했기 때문이었다.
일전에 읽은 ‘하나님 나라의 성찬’에서
알렉산더 슈메만은
신학의 본질을
하나님께 합당한 말들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단어들의 왜곡 여부를
분별해야 한다고 했는데,
몇몇 신학자들은 제 본분을
다하지 못한 듯 보여 안타까웠다.
게다가 이 책의 제목인
‘탐욕의 복음’이라는 말이 무척 우려되었다.
왜냐하면 ‘탐욕’을 ‘복음’과 짝짓는 것은
명백히 언어도단이며,
나아가 ‘복음’이라는 언어를
왜곡시키는데 한 몫을 할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4.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이단적 가르침은
하나님의 능력이 십자가에서
온전히 나타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부와 건강과 번영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그러나 고든 피는 말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의 메시야를 십자가에서 구원하는 것이나
그의 사도를 육체적 고통에서
건져내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십자가 그 자체에서
그리고 사도의 약함에서 온전해지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고 싶다.
이제는 육체의 질병도
하나님의 은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Jan. 28. 2014.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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