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인 것이 부끄러웠던 순간부터
나의 부끄러움은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거듭해왔다.
그래서 여자인 것이 부끄러웠던 나는
여전도사인 것을 부끄러워했고,
사모인 것을 부끄러워했다.
부끄러움의 관성의 법칙 안에서
나는 나를 자책하고, 비하하고,
미워하길 반복했다.
그리고 그 못 돼먹은 그 법칙은
부끄러움이 마치 내 존재의 전부인양
부끄러움의 프랙탈(Fractal)을
내게 대입시켜갔다.
그러다 은혜가 임했다.
진리이신 그 분은
내 존재와 나의 부끄러움을
정확히 구별하셨다.
그리고 매일 말씀을
빠짐없이 쏟아 부어
내 부끄러움의 프랙탈을
기어이 산산조각내고 마셨다.
알고 보니 내 부끄러움은
차별과 억압과 폭력의 상처를 먹고
울컥 자란 것이었다.
그것의 핵심 연료가 폭로되자
부끄러움의 관성의 법칙에도
조금씩 금이 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여자인 것을,
여전도사였던 것을,
그리고 사모라는 것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허나, 부끄러움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다.
녀석은 질긴 생명력으로
잘려나간 밑동에서 결국 다시 싹이 틔웠다.
그래서 나는 요즘
선교사인 것을 부끄러워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선교사로서
고난 받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선교사란
이전 선배들이 일군 영광과 함께
그들이 저질렀던 잘못과 실수와 죄의 대가도
고스란히 물려받는 자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내 눈에는 그들의 영광은 온데간데없고,
치러야할 대가만 가득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부끄러웠다.
기독교가, 그리고 선교사가
이 땅 아프리카에 행했던
수많은 잘못과 실수와
죄악의 흔적을 목격할 때마다
나는 부끄러웠다.
과거에 선교사가 세웠던 학교에
선교사로 들어가 사역하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가
치러야할 대가라고 생각하자
나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요즘 내 마음은
부끄러움으로 바짝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디모데후서 1:11-12)
부끄러워하는 내게 다시 말씀이 임했다.
“부끄러워하지 마라.
선교는 선교사가 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사를 보낸 내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선교사가 선교를 망쳤다고
부끄러워하지 마라.
마침내 그들을 통해
내가 선교하고야 말 것이니
더는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 분이 내 부끄러움을 들어
망치로 내치신다.
가마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하나 같이 하자 품들이라서
면목이 없다.
그러나 그 분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장인이시기에
나는 또 다시 그 분께
가마 전부를 맡기기로 한다.
그 분 손 안에서 다루어지고
깨트려지기로 한다.
키리에 엘레이손!
#May. 18. 2013. 사진 & 글 by 이.상.예.
'그 여자의 보물창고 >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신 하나님 (0) | 2013.05.30 |
---|---|
자기 사욕의 스승 Vs 바른 교훈의 스승 (0) | 2013.05.23 |
아닷 타작마당을 거닐며 (0) | 2013.05.01 |
유다의 힐링 캠프 (0) | 2013.04.25 |
늙은 야곱 쫓아내기 (0) | 2013.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