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제단 청소하기

창고지기들 2011. 10. 19. 07:58

 

 

구약의 유대인의 시간관념은

오늘날의 우리와 전혀 다르다.

 

오늘날의 우리는 시간이

새벽으로부터 시작으로 해서

저녁 잠자리에 들 때

마무리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유대인들은

저녁 일몰로부터 시작해서

다음날 저녁 일몰 때

마무리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회막에서 드린 첫 제사는

아침에 드리는 번제가 아니라

저녁에 드리는 번제일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아침까지

제단 위에 있는 석쇠 위에 두고

제단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속바지로 하체를 가리고

제단 위에서 불태운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제단 곁에 두고,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영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갈 것이요”

(레위기 6:8-11)

 

 

 

 

하루의 첫 제사,

즉 저녁 제사 때

올려놓은 번제물이

밤새 타고 난 아침.

 

 

밤새 제단 위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지켰던(레위기6:12)

긴 세마포 옷을 입은 제사장은

불에 타고 남은 번제의 재(ashes)를

따로 모아 둔다.

 

그런 후 제사장은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후

그 재를 진영 바깥에 위치하고 있는

재 버리는 곳(정결한 곳)에

가져가 버린다.

 

 

이른 아침에

재를 모아 버렸던 이유는

아마도 그 날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계속해서 드려야 하는

여러 종류의 제사를 위한

일종의 제단 청소였을 것이다.

 

 

 

아직 아무도 깨지 않은

그 이른 아침에

제사장 옷을 벗고

일반 복장으로 갈아입은 제사장이

재를 들고 진영 밖으로 걸어간다.

 

 

 

하루 종일 회막에 머물면서

백성들을 위해서

 짐승의 피 비린내와

고기 태우는 냄새를 맡으면서

뜨거운 불 앞에서

치열하게 섬겨야 했던 제사장.

 

회막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뜨거운 불을 견디면서

내가 아닌 백성을 위해서

섬기는 것이 어찌 쉬웠으랴?

 

 

어쩌면 그는

왜 나에게 이렇게 힘든 일을

맡기셨을까? 하며

하나님께 한탄하는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밤새 타고남은

번제물의 재를 가져다 버리면서,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받으시는

좋은 향기가 되지 못하면

그 인생은 재처럼 허무하게 버려진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목도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재를 버리면서 그는

자신을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불러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회복시켰을 것이다.

 

 

 

그러므로 매일 아침

재를 버리는 일,

곧 제단을 청소하는 일은

제사장이 하루 종일 좁은 공간에서

뜨거운 불을 지피며 섬기는데 있어서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분의 임재 안에서

그 분께 기도를 드리면서

나의 첫 저녁 제사는 시작된다.

밤새도록 나는

그 분의 임재 안에서

나의 영혼의 불이

그 분을 향해 꺼지지 않도록

꿈에서 조차

그 분을 향하려 한다.

 

 

그렇게 첫 제사로 드린

번제가 끝날 새벽 무렵,

나는 일어나서 말씀 곁에 선다.

 

 

말씀 묵상으로

아침 번제를 드리기 전,

나는 제단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밤새 타고 남은 재를 모으는 것이다.

 

 

 

무심코 보았던 인터넷 기사들,

흘려들었던 노래 가사들,

읽었던 책의 몇 구절들,

뜬금없이 기억되는 과거의 추억들,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

서운한 감정들,

이러저러한 걱정들,

삶의 형편에 대한 불만들...

 

 

 

재를 긁어 낼 때마다

생겨나는 먼지 때문에

한참을 콜록거린다.

더욱 조심스럽게

재를 한데 모아 놓는다.

 

곧 제사장 복장을 벗고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고는

재를 가지고 진영 밖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그것을 정해진 곳(!)에 버린다.

 

 

버려진 재가

이리저리 부유(浮遊)한다.

부유하는 재를 보면서

나는 그 곳에 나를 버린다.

쓸데없는 것들에 묶여서

거짓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나를

재와 함께 버린다.

 

 

재빨리 회막에 돌아온 나는

다시 제사장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제단의 청소는 끝났다.

이제 아침 번제를 드릴 시간이다.

 

 

 

“저의 아침 번제를

기뻐하시는 주님!

덧없고 허무한 재를 진영 밖,

곧 제 마음 밖에 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저의 제단은

당신을 예배하기 위한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러하오니 말씀하여 주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Oct. 18. 2011.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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