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믿음 생활 놀이

창고지기들 2012. 12. 14. 21:37

 

 


우간다 쌀은 음흉(?)하다.

우간다 쌀이 음흉한 이유는

쌀겨와 돌을 몰래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간다 쌀을 사먹는다.

그나마 묻어있는 찰진 기운 때문이다.

 

가끔씩 돌을 씹을 때마다

나는 그 옛날 나의 어머니처럼

조리로 쌀을 일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시절 쌀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조리질을 하고 나면

바가지 밑에 돌들을 남기곤 했었다.

 

 

욥기 묵상을 하면서 나는

돌을 씹을 때도 그를 생각하게 된다.

 

누구 봐도,

심지어 하나님께서 보셔도

온전했기 때문에,

바로 그 온전함을 이유로

욥은 고난에 완전히 침수되었다.

그리고 고통의 조리질이 욥을 일자,

욥 안에게 깊이 숨겨져 있던 돌이

결국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그것은 교만이었다.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욥기 36:7-10)

 

 

엘리후는 다른 친구들처럼

욥의 고통을 통시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욥의 고통에

강렬한 공시적 조명을 비춘다.

그래서 그는

욥조차도 모르고 있던,

욥 안에 숨겨져 있던

돌인 교만을 순식간에 건져낸다.

 

엘리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

욥의 표정을 카라바조식으로 상상해본다.

충격으로 일그러진 상처뿐인 얼굴이

테네브리즘으로 더욱 하얗게 질려 보인다.

그의 얼굴이 너무 고통스러워 보여서

외면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와 눈이 마주쳐버려서

나는 말문을 열 수밖에 없다.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지금 당신의 마음을.’

 

 

케냐에서 고통스러운 조리질로

한바탕 일어지자 내게도

숨겨진 돌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즉,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내가 원했던 목자는

하나님만이 아니었다.

나는 해(害)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확실히 눈에 보이는 장치도 원하고 있었다.

 

그 분에 대한 믿음으로

케냐에 들어왔다가

고통스런 조리질을 통해

나는 내 안에 숨겨져 있던 돌인

불신앙을 대면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믿음 생활은

마치 소꿉놀이처럼

믿음이 있는 줄로 착각하면서,

혹은 믿음이 있는 척하면서 해왔던

믿음 생활 놀이에 불과했던가?

 

2학년인 하진군의 꿈들 중 하나는

빨리 고학년이 되는 것이다.^^;

고학년이 되고 싶은 이유는

스포츠 팀에 들어가고 싶어서다.

 

녀석이 고학년 타령을 할 때마다

나는 말한다.

고학년은 공짜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고학년이 되면 훨씬 더 많은

공부와 숙제를 해야 한다고.

 

어른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아픔과 고통을 통과 해야만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어른들은

더 이상 소꿉놀이를 하지 않는다.

더 이상 엄마인척,

아빠인척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짜 엄마와 아빠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케냐에서 욥과 함께

탄식으로 시작해서

원망과 분노로 휘몰아치다

회개로 마무리 되는

고통의 정석 문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렇게 고통의 문법을 힘겹게 배우면서

나는 믿음 생활 놀이,

선교사 놀이를 졸업하고

진짜 성도요, 선교사가 되어가는 중이다.

 

 

 

키리에 엘레이손!

 

 

#Dec. 14. 2012.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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