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선교사'에 수건 씌우기

창고지기들 2012. 7. 5. 18:12

 

 

 

아우라!

 

우리는 ‘아우라’가

각광을 받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아우라란

한 개인이나 작품 등에서 풍겨나는

그 어떤 것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의미한다.

 

무엇이든지 돈으로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소비의 사회에서

돈으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아우라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우라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성경 인물들 중에서

아우라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모세일 것이다.

그의 얼굴 피부에선

실제로 번쩍번쩍 광채가 났다고 하니

뉘라서 그의 아우라를 능가하겠는가?

(출34:29)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던 이유는

그가 여호와와 대면하여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세의 얼굴은

자체 발광했던 것이 아니라

빛의 근원이신 여호와의 빛을 받아

빛나게 되었던 것이다.

 

허나, 모세는 자신의 아우라를 깨닫지 못했다.

아우라란 원래 그런 것이다.

자신의 아우라는

절대로 스스로 알아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아우라를 먼저 알아보는 것은 언제나 타인들이며,

그들을 통해서 비로소 본인도 알게 되는 것이다.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를 본

아론과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가까이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제서야 모세는 자기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얼굴에서 나는 광채는

모세에게는 하나의 난관이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로서

백성들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얼굴의 광채로 인해서 백성들은

모세에게 가까이 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친근하게 부르면서

그들과의 대화를 계속해서 시도했다.

(출34:31)

 

그 제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예전의 그 모세라는 것을 알고는

안심하며 모세에게로 다가가 그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후,

모세는 자기 얼굴을 스스로 수건으로 가렸다.

얼굴에서 나는 광채를 덮어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사도 바울은 모세의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고후 3:13)

 

 

모세는 자기 얼굴의 광채가

비록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주기는 하지만

잠시 후면 사라져 버릴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연약한 이스라엘은

그런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보이는 대로 모세의 광채를 가지고

마치 모세가 여호와의 영광이라도 되는 냥

모세를 높이기에 바빴을 것이다.

 

아마도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여호와의 영광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이

잠시 후면 사라질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애써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던 것이다.


 

 

 

 

 

 

말씀(출34:29-35)을 묵상한 후에,

나는 곧 수건으로 덮어야 할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선교사’라는

빛나는(?!) 명칭이었다.

 

지금 나는 부담스럽게도(!)

선교사라고 불리고 있다.

그렇게 내 이름 뒤에 붙는 명칭은

나를 마치 다른 종류의 사람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

 

 

내가 선교사로 불리게 된 이유는

모세와 다르지 않다.

여호와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말하였음으로,

즉, 그 분과 성경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교제하고 관계하였음으로

나는 지금 예기치 못하게(!!)

선교사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나의 사역들 중 하나는

한 인터넷 미주 커뮤니티에서

각종 묵상 글들을 게시하여 나누는 것이다.

작은 섹션의 운영자로서

이 사역을 한지도 벌써 만 5년이 훌쩍 넘어 버렸다.

 

처음 이 사역을 시작했을 때의 나는

그저 일개 유학생 마누라였다.

당시 나는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는 범위에서

여러 가지 글들과 사진들을 나누었었다.

허나, 선교사로서 케냐로 오게 되었을 때는

내 자신을 노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을

선교사로 커밍 아웃(?!) 했고,

그 후로 내 글에는 좀처럼(2달 정도)

댓글이 달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러한 현상에 어리둥절했었다.

그래서 이제 그만 이 사역을 접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해보았다.

 

그러나 선교사가 되기 전,

내가 가지고 있었던 선교사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광채)와 편견들을 기억해 보니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글쓴이가 선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선뜻 다가와 댓글을 달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처음 이 사역을 시작한 이유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 이민자들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선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처음 가졌던 목적을 되새겨 보면서

나는 다시 마음을 새롭게 해본다.

 

 

나는 모세처럼

선교사라는 이름의 광채를

부담스러워하는 그들을 부르면서

계속해서 그들에게 말을 붙일 것이다.

 

그렇게 그들에게로 다가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선교사라는 빛나는 명칭에 수건을 씌운 후,

하나님 앞의 한 사람으로서,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한 사람으로서,

기쁨과 슬픔과 아픔과 감격을

정직하게 들려 줄 것이다.

 

 

키리에 엘레이손!

 

 

#Jul. 5. 2012.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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