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창고지기들 2025. 7. 5. 11:38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책, <어둠 속에 갇힌 불꽃>을 읽고.

 

 

바알 셈은 내게 무진장한 뜻의 광갱에 대해 가르쳐주었고, 코츠커는 삶의 길 위에 뻗쳐 있는 측량 못할 부조리의 산맥을 탐색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한 사람은 내게 노래를 가르쳤고, 다른 사람은 침묵을 가르쳤다. 한 사람은 내게 이 땅 위에 천국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고, 다른 사람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천국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장소에서 지옥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게 했다. … 바알 셈은 내 삶 속에 등불처럼 함께 살았다. 반면에 코츠커는 번갯불처럼 나를 쳤다. 물론 번갯불이 더 순수한 불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은 등불을 믿고 등불에 의지한다. 등불과 더불어 있을 때 사람은 평화로이 살 수 있는 것이다. 바알 셈은 내게 날개를 주었고, 코츠커는 나를 사슬로 묶었다. 나는 한 번도 그 사슬을 끊고 마음에 결점을 지닌 채 즐거움 속에 뛰어 들어갈 용기를 가져보지 못했다. 나는 바알 셈에게서 도취를, 코츠커에게서 겸손의 은혜를 얻어 빚을 진 셈이다. -본서 중에서

 

 

<어둠 속에 갇힌 불꽃>은 은유다. 그것이 지칭하는 바는 일반적으로는 유대인을, 구체적으로는 렙 메나헴 멘들(Reb Menahem Mendle), 일명 코츠커를 가리킨다. 그는 하시드 운동권에서 바알 셈 토브와 함께 양대 기둥 역할을 담당했다. 저자는 코츠커의 사상과 역할을 오롯이 설명하기 위해서 하시디즘의 바알 셈 토브(유대 신비주의자)와 함께 기독교의 키르케고르와 비교·대조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키르케고르는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기독교를 가르치려했던 철학자다. 그들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공히 종교의 통속화, 곧 유대교와 기독교의 통속화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그것의 대안으로 공동체 보다는 개인을 강조한다. 즉, 개인은 신 앞에선 단독자로서 고통을 벗 삼아 숨겨진 진실(진리)을 발굴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코츠커와 키르케고르에게 개인은 나약하거나 무능력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는 점이다. 부조리와 거짓이 난무하는 비합리적 상황 속에서도 결국 진실을 찾아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가 개인인 것이다. 특별히 코츠커의 파라오에 대한 해석은 극단과 이단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그는 파라오를 전적으로 다른 인종으로 보았는데, 비록 재앙을 떼로 만났어도 스스로에게 여전히 진실했다는 점을 높이 산다. 반면, 에집트에서 포로생활을 견디다 못해 익숙해진 이스라엘은 고통에 무릎을 꿇었다는 점에서 곱지 않게 보았다. 고통을 수용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한 편만 들고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때를 따라 수용과 저항을 선택하는 것인 지혜라는 점에서 코츠커와 키르케고르는 실존적 상황 속에서 개인의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선택과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간의 전적 타락과 구원에 있어서의 전적 무능력을 강조하는 신학을 가르치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터다. 덕분에 내게 인간의 디폴트는 타락하고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창조되었다는 것은 그 다음에 붙는 에드 혹(ad hoc) 정도다. 이와 같은 신학적 인간론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극대화시키는 반면, 인간의 실패와 책임을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지인들을 비롯해 나 스스로에 대해 갖는 뿌리 깊은 체념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코츠커와 키르케고르의 인간론은 확실히 신선했다. 물론, 아카시아 못지않게 깊이 박힌 나의 체념의 뿌리를 완전히 흔들 만큼은 못 되었지만.

 

 

만일 어떤 사람이 다만 어제 기도했다는 이유로 오늘 기도를 바친다면 그는 악당보다도 더 못된 자라고 코츠커는 말했다. 매일 매일의 기도는 신선한 것이어야 했다. 인간은 매일 진리를 찾되,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찾듯이 찾아야 한다. -본서 중에서

 

지금까지도 규칙적으로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있다. 반복이 형성한 습관이 매너리즘에 빠지게 했음에도. 매너리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습관을 중단하여 매너리즘을 없앨 것인가? 아니면 매너리즘을 느끼지 못할 때까지 습관을 고집스럽게 지속하면서 버틸 것인가? 나의 선택은 번번이 후자다. 이 때 유용한 기술은 낯설게 하기로 마음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물론, 가까스로 매너리즘에서 벗어난 데도, 일련의 매너리즘들은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성숙을 위한 필수 고통에는 매너리즘 견디기가 포함된다. 나의 매일은 견디기로 충만하다. 코츠커는 습관에 매여 살아가는 내게 악당보다도 못된 자라며 비난했다. 타격감은 별로 없었다. 그 만큼 습관의 굳은살이 단단히 박힌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매일 새롭고 신선한 것이 못되는 나의 묵상과 기도를 슬퍼하면서, 지속하기로 한 것이다. 그 와중에 저자의 문장들을 가져다 슬픔을 닦는다. 

 

 

우리는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안다. 왕이 우리를 고용했고 근본적인 책임은 그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를 고용한 그 분을 기억하는 것이다. … “엉망진창의 지옥에 있으면서, 믿음으로 살아남으라” -본서 중에서

 

 

 

#Jul. 5. 2025.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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