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에서 졸고 있는 나에게
월요일마다 민수기에 입장한다. ‘광야의 책’ 속에 들어갈 때마다 매번 거쳐야 하는 곳이 있다. 성막이다. 휘장 문을 열고 바깥뜰에 들어서면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 있는 성막이 보인다. 제단을 지나 마사크(문 휘장)를 열고 성소에 들어서면 파로케트(지성소 문 휘장) 앞에 위치한 분향단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앞으로 왼쪽에 놓여있는 등잔대가 오른쪽에 자리한 진설병이 놓인 상을 비추고 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성소는 미니멀하면서도 고급스럽다. 성소에서 보이지는 않아도 파로케트를 열고 들어가면 언약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쩐 일인지 나는 성소에는 자주 들락날락해도 지성소까지 들어가 본적은 거의 없다.
성막의 공간감에 익숙해진 까닭일까? 고난 주간에 잠깐 마주한 마태복음의 겟세마네 장면이 색다르게 보인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여덟 명 제자들)는 여기 앉아 있으라(마태복음 26:36)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태복음26:38)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마태복음 26:39)
그 밤에 내 눈은 겟세마네에 세워진 성막을 발견한다. 휘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뜰에 여덟 명의 제자들이 앉아있다. 그들을 지나 성소에 들어가자 3명의 제자들이 머물러 있고, 그들 너머 저 편 지성소에 예수께서 시은좌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계신다.
누울 자리 봐 가며 발을 뻗는 편인 나는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할지 두리번거린다. 성격상 마음 편한 자리는 아무래도 바깥뜰이다. 성소에서 나가려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너에게 적당한 자리는 성소가 맞다’라는 누군가의 판단이 바짓가랑이를 꽉 붙들고 있다. 신학 공부를 하고 교회와 선교지에서 사역했던 전력, 등잔대에 기름을 붓고, 진설병을 구워 플레이팅을 하고, 분향단의 재를 청소하던 이력에 결국 발목이 잡히고 만다. 하는 수 없이 베드로 등과 함께 성소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마태복음의 겟세마네에서의 나의 미션은 단순하다. 성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지성소에 계신 주님과 함께 깨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미션 실패가 꽤 확실한 편임을 나는 알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나는 졸음에 겨운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그만 잠에 빠져들고 만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지성소에서 나오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실패의 원인을 지적해주신다. 잠결에 들려오는 음성이 누워 자던 마음을 흔들어 일으킨다. 갑자기 흉통이 느껴진다.
‘육신의 약함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에 원마저도 없는 나는 대체 뭐란 말인가?’
잠시 후, 두 번째로 지성소 문 휘장을 열고 나오신 주님이 말씀하신다.
“눈이 피곤해진 게지.”(마태복음 26:43)
평안할리 없는 세상에서 평안한 듯 살아가고 있었다. 보이는 평안(?!)에 반하여 시선을 떼지 못하는 자의 눈은 피곤하기 마련이다. 게으름은 보이는 것에 찌든 자의 영적 상태다. 반면, 영적 근면가(勤勉家)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한다.
올해도 나는 성소에 앉아서 졸고 있다. 이쯤 되면 내게 성소는 거실이 아니라 침실이다. 나의 미션, 곧 지성소에서 성부 하나님께 필생의 기도를 드리는 주님과 함께 깨어 있기는 이번에도 실패다. 졸지 않고 깨어 있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육신도 약한 나는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의 원(願)도 피곤하기 짝이 없다. 계면쩍어 갱년기 핑계를 대어본다. 부끄럽다.
주님이 세 번째로 지성소 휘장을 열고 들어가신다. 얼마나 지났을까? 곧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될 파로케트를 정리하시는 주님의 손이 보인다. 그 손으로 졸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우면서 주님이 말씀하신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마태복음 26:46)
주님과 함께 간 그 길에서 내가 볼 것은 뼈아픈 고통의 순간들일 것이다. 동료들의 배신과 부인과 도망침, 그리고 주님이 무참히 매달린 십자가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고작 이런 걸 보여주려고 함께 가자고 한 것이냐고 울며불며 소리칠 나다. 나는 그 만큼 어리석고 연약한 종류니까. 그럼에도 주님은 한사코 나와 함께 가길 고집하신다. 십자가 너머에 있는 부활, 그 무겁고 찬란한 영광을 나와 함께 나누길 열망하시기에. 키리에 엘레이손!
보라,
주님을 파는 자가
가까이 왔다.
십자가가 멀지않으니
영광은 벌써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소에서 졸고 있는 나여,
일어나라,
일어나 주님과 함께 가라!
#Apr. 8. 2023. 사진 & 글 by 이.상.예.
'그 여자의 보물창고 >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상 왕의 상에서 (0) | 2023.05.06 |
---|---|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0) | 2023.04.22 |
아비가일에게 장가 들기 (0) | 2023.04.01 |
외인에서 레위인으로 (0) | 2023.03.18 |
머릿속에 있는 두 눈 (0) | 2023.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