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외인에서 레위인으로

창고지기들 2023. 3. 18. 11:39

 

 

 

 

외인에서 레위인으로

 

 

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민1:51)

 

 

만학도가 되었다. 그것도 여성 목사 안수를 전면 부정하는 교단 신학교에 다시 입학하게 되었다. 목사에게 부과된 예배권, 축도권, 판결권이 남성 성직자만의 전유물이라는 것이 그곳의 입장이다. 목사직으로의 소명이 없는 내게 그것은 걸림돌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내 인생의 책인 ‘성경’의 각권을 면밀히 연구하고 싶은 것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의 특징상 교수의 대상이 남성 성직자라는 점에서 나는 외인(外人)이다. 내가 여성인 까닭이다.

 

 

신약 이후의 성직자들, 그중에서도 교권주의자들은 구약의 레위인들로부터 정체성을 길어 마신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위치하여 양쪽이 서로 안전하게 관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레위인들의 역할이다. 레위인들을 콕 집어 그와 같은 사역을 맡긴 것은 백성이 아니라 여호와시다.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민1:53)

 

성막은 외인이 가까이 접근했다가는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곳이다. 치명적 거룩성을 소유하고 계신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이다. 자비하신 하나님은 무지한 백성들이 무심코 성막에 다가와 생명을 잃는 참사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 성막과 백성 사이에 고압선 철조망을 설치하셨다. 레위인들로 성막 사방에 진을 치게 하셨던 것이다.

 

외인에게는 치명적인 장소인 성막은 레위인들에게는 일터였다. 그들은 제사장의 지휘 아래 성막을 운반하고 세우며, 성막에서 진행되던 각종 제사와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도왔다. 레위인과 그 밖의 외인들을 구분 짓는 것은 일종의 권한이었는데, 그들의 권한은 후천적으로 획득하는 종류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부여된 것이었다. 하나님은 레위인들에게만 성막을 가까이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고, 레위 지파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것을 거저 받았다. 그러므로 성막 접근권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감사할 내용이었다.

 

엔트로피의 세상에서 은혜로 주어진 권한이 특권으로 부패되는 것은 예사롭다. 일반 백성을 위한 레위인들의 성막 접근권은 결국 성직자주의로 변질되었다. 레위인들을 자신의 근원이라 주장하는 일부 성직자들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재하는 레위인들의 역할에 특별한 권한과 권력을 덧입힌 것이었다. 그들은 성직자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종교적 권력을 막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권력은 그들로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가 아니라 걸림돌이 되게 하고 말았다.

 

 

개신교는 ‘만인제사장설’을 공공연히 부르짖는다. 교권주의(성직자주의)를 반대하는 영토 위에 세워진 것이다. 개신교인들은 영원한 대제사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해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고백한다. 이때 성직자는 예배와 성만찬을 집례 하는 인도자이자,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돕는 역할을 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인격적이고 신앙적인 존중과 존경의 대상이 될지언정 강압적이고 무조건적인 순종과 복종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현대에도 하나님은 성직자들을 선택하신다. 위에서 부르시는 소명에는 차별이 없다. 하나님은 인종, 성별, 학벌, 재능, 능력 등에 상관없이 당신의 뜻대로 누구든지 레위인으로 태어나게 하신다. 자기 백성들을 죽이지 않고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땅에서의 소명은 다르다. 차별이 없는 곳이 없는 것이 세상인 까닭이다. 성직자를 임명하는 일에도 차별은 간섭한다. 남성은 가하나 여성은 불가하다는 차별은 성직자주의와 교권주의의 애용품이다. 특별한 권한과 권력은 차별을 통해 더욱 공고해지는 법이다.

 

 

그들이 나를 부른다.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너여, 너는 우리 밖의 외인이다.” 

 

그들이 나를 겁박한다. 성막에 가까이 다가가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그렇다면 그들과 함께 공부하기로 한 나는 목숨을 건 것이 된다. 치명적인 성막에 가까이 다가가는 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정한 까닭이다.

 

 

문득, 위에서 부르시는 음성이 들린다. 

 

“너는 나의 레위인이다. 오늘날 내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너를 낳았다.” 

 

 

오래 전, 나는 외인이라 낙인찍힌 채 성막으로부터 멀리 쫓겨났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레위인들의 진영 안으로 돌아왔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따라 외인이었던 나는 죽고 부활하여, 레위인으로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서 외인이 아니라 레위인으로 거듭났다. 소란스러운 땅이 뭐라고 부르든 나는 위에서 부르신 부름을 따라 달려 가고 말 것이다. 키리에 엘레이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3-14)

 

 

 

 

 

 

#Mar. 18. 2023.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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