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을 계속하라
귀국한지 만 일 년이 되었다.
대륙을 넘나드는 이사를 수차례 해본 경험상
일 년이라는 시간은 정착을 위한 기간으로 적당하다.
이제는 더 이상 선교사라 불리지 않는 나다.
직함은 옷과 같은 것인데,
개인적으로 선교사라는 옷은 익숙해지기 힘든 의복이었다.
그러나 시간 앞에 장사는 없다는 말은 옳다.
그 서먹한 옷을 입고 십 여 년을 지내다 보니,
여지없이 익숙함이 배어들었다.
어느새 편안해진 옷은 나를 감싸 보호해주었고,
정체성을 오롯이 해주었으며, 삶에 의미를 마련해주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또다시 찾아온 만사의 기한.
그것의 엄중함을 따라 나는 마침내 선교사를 벗어버렸다.
벗고 나면 홀가분할 줄로만 알았는데, 시원함보다 섭섭함이 컸다.
아니, 큰 것은 섭섭함이기보다는 차라리 고요한 동요였다.
지금껏 선교사로서 해온 사역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의 목적과 의미는 어떻게 조정되어야 하며,
어떻게 변화 발전 되어야 하는가?
그 과정에서 나는 무엇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urged)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전서 1:3-4)
귀국은 권유보다는 강요에 가까웠다.
그래서 강제로 징집된 것처럼 모든 살림을 남겨둔 채 떠나왔던 것이다.
강력히 권하여 나의 에베소인 한국에 머무르라 하신 데에는 필경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거짓 교훈이 아닌 참 교훈을 따르게 하기 위함이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가 아닌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디모데전서 1:11)을 따르게 하기 위함이다.
결국 지금껏 해외에서 선교 사역으로 해왔던 성경 묵상의 일을
에베소에서 하기 위해 나는 귀국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역의 본질과 내용은 같고, 다만 사역의 방식만이 달라지면 된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실천해온 사역의 단편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통합하는 방식으로.
정착으로 일 년을 지불하자, 전환기가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자 성큼 그가 들어왔고, 무언가를 내게 내밀었다.
편지였다.
그에게 테이블 의자를 내어준 뒤, 서둘러 편지를 열어 보았다.
Train yourself to be godly.
/경건하게 되도록 훈련하라.
Do not neglect your gift.
/너의 소명(은사)에 태만하지 마라.
Watch your life and doctrine closely.
/네 삶과 말씀을 면밀히 살펴 묵상하라.
Persevere in them.
/너의 이 일을 계속하라.
(디모데전서 4:7,14,16)
경건의 훈련은 묵상을 통해 삶과 말씀을 면밀히 살펴보는 일이다.
나의 소명이자 은사는 묵상 나눔과 글짓기다.
묵상한 삶과 말씀을 모임에서 동료들과 나누면서 함께 기도하는 것과
그것을 글로 지어 읽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도착한 뒤,
우크라이나 동료들과의 묵상 모임 외에
한국 동료들을 모아 묵상 모임을 열었던 것이다.
최근에 케냐에서 묵상을 나누었던 동료들과 만났다.
그들은 ‘에셀 나무’라는 이름의 묵상 모임을 처음으로 만들어 함께했던 초창기 멤버였다.
그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어쩐 일인지 불편함이 느껴졌다.
불편함의 정체를 알기 위해 한동안 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가 좌절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척박한 블레셋에 살면서 노란 물통을 머리에 이고
4년을 하루 같이 물을 길었던 시절이 케냐에서의 나날이었다.
아브라함의 우물에서 힘겹게 길어온 물을 아낌없이 부었어도
잎사귀 하나 내놓지 않았던 나무가 그곳에 있었다.
바짝 말라비틀어져 한 개도 예쁘지 않았던 케냐의 에셀 나무.
열매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꽃도 개의치 않았다.
푸른 잎사귀면 충분했다.
그러나 강퍅한 나무는 그것마저 거절했고, 나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래서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발각된 좌절감은 다루기 알맞게 축소되었다.
나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은 뒤 그들을 만났다.
살아남기 위해 고군부투해온 그들의 여정이 눈물겨웠다.
어느 틈엔가 좌절감은 주머니 밖으로 빠져버렸다.
대신에 그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두둑해졌다.
나는 일(소명이자 은사)에 태만한 종류가 아니다.
오히려 성실하고 근면했던 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묵상의 일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마음을 따라
마침내 ‘온라인 에셀 나무 케냐 리더 모임’ 마저 오픈하게 된 것일 테다.
묵상을 통한 경건 훈련,
그 소명에 태만하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기를!
키리에 엘레이손!
#Oct. 16. 2021.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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