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고난의 축제

창고지기들 2021. 5. 15. 09:08

 

 

 

 

 

고난의 축제

 


축제란 기념과 축하의 의미를 담는다. 

그런 점에서 무교절(The Festival of Unleavened Bread)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축제다. 

그런데 무교절은 여느 축제와는 퍽 다르다. 

축제라 하면 응당 눈과 코와 혀에 착 감기는 아름답고, 

기름지고, 부드럽고, 맛좋은 음식들이 풍성해야 마땅하거늘, 

무교절은 이름처럼 무교병, 

곧 발효하지 않는 빵을 지정해서 먹는 축제다. 

일명 ‘고난의 떡’이라고 불리는 무교병을 먹으면서 

축하하는 축제라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 축제인가!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려 하므로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출애굽기 12:33-34)


유월절 바로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축제가 무교절이다. 

이스라엘에게 유월절이란 어린 양의 피를 통해 

죽음이 넘어갔음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축제다. 

반면, 애굽에게 그것은 모든 장자들이 

한꺼번에 몰살당한 끔찍한 국가 재난일이다. 

즉, 출애굽은 애굽 장자들의 죽음으로 최종 성사된 것이었다. 

죽음과 생명, 억눌림과 해방, 고통과 구원이 

유월절을 기점으로 역전되었고, 

무교절을 통해 비로소 완성의 첫걸음을 떼었다.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출애굽기 12:39-40)


무교절 축제의 핵심인 무교병은 

출애굽의 급박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물질이다. 

누룩으로 빵을 부풀릴 시간도 없이 급하게 애굽을 탈출해야 했던 

그 날의 긴장감을 집약시킨 것이 무교병이다. 

그러나 그것에는 ‘짧은 시간’만 담긴 것이 아니다. 

발교되지 못한 반죽을 둘러메고 그것을 구워먹으면서 

애굽을 탈출하는 일은 무려 430년이나 고대해왔던 일이다. 

그렇게 무교병은 그 길고도 긴 기다림 끝에 

단숨에 일어난 구원을 상징하기도 한다.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날을 지킬지니라

(출애굽기 12:17)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통해 비로소 탄생했다. 

애굽의 한낱 노예였던 부족 이스라엘이 

명실상부한 하나의 나라이자 군대로 태어난 사건이 출애굽이다. 

애굽이라는 튼튼한 자궁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난 이스라엘이 

산달이 되자, 여호와께서 보내신 산파 모세를 통해 

열 번의 진통(재앙) 끝에 태어난 사건이 출애굽인 것이다. 

이스라엘을 만드시고, 애굽의 자궁에서 돌보신 후, 

모진 산고 끝에 태어난 이스라엘을 품에 안은 아버지는 여호와시다. 

즉, 출애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작품이었다.


애굽 장자들이 몰살당하던 그 날 밤, 

이스라엘이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여호와 덕분이었다.

여호와의 비책을 따라 인방과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랐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애굽의 노예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고통에서 해방과 구원으로 옮겨졌다. 

이 때 주목해야 할 점은 이스라엘에게 무슨 선함이나 의로움이나 

아름다움이 있어서 여호와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겠다는 여호와의 사랑의 의지, 

그 하나가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므로 출애굽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철저히 겸손할 필요가 있다. 

철저히 여호와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높여야 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곡해(曲解)를 일삼는 자들은 

출애굽이란 여호와의 은혜 더하기 이스라엘의 비범함이 

가져온 결과라고 거짓 주장을 할 것이다. 

거짓이 만연되면, 무교병을 먹으며 축하하는 무교절은 

자칫 유교병을 먹으며 축하하는 축제로 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스트로 부풀린 부드럽게 맛있는 빵을 멋대로 즐기면서 

흥청망청 즐거워하는 축제는 결코 여호와의 뜻이 아니었다.


여호와께서 사랑하신 것은 이스라엘만은 아니었다. 

애굽 역시 그분의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그분은 애굽에 수많은 재앙들과 함께 

자신이 창조하신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음에 넘겨주셨다. 

언약 관계에 있었던 이스라엘을 오랜 고통 속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기로 선택하셨던 것이다. 

이는 여호와 편에서 쉽지 않은 결단, 

처절한 번뇌 끝에 내린 힘겨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교절에는 이와 같은 여호와의 고통 또한 서려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교병, 그 딱딱한 고난의 떡을 먹으면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구원을 기뻐하는 동시에 애굽의 장자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피눈물을 헤아려야 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출애굽기 12:15)


유교병을 먹으려는 자는 출애굽이라는 사건의 

‘기념’은 약화시키고, ‘축하’를 부각시키려는 자이다. 

그러나 고난에 대한 기념과 마침내 이루어진 구원에 대한 축하는 

그 어느 하나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것이 무교병을 먹으면서 출애굽을 축하해야 하는 이유다. 

고난의 떡 없는 축하는 출애굽을 변질시킨다. 

고난의 떡을 먹는 축제가 아니고서는 

고난과 기쁨을 모두 아우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는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Remove the yeast from your houses)’고 말씀하셨다. 

고난을 제거하고 번영만 누리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 

뭔가 특별한 자격이나 자질이 내게 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라는 자기기만을 제거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축하는 하되 고난의 떡을 먹으면서 

겸손히 절제된 태도로 축제를 즐기라고 하셨다.

 


내게도 무교절 축제가 있다. 

고난의 축제가 있다. 

함께 모인 우리는 축제를 즐긴다. 

오랜 기다림으로 지친 마음,

급박하게 성취되는 변화(구원)에 대한 거부감, 

죽음과 생명 사이에서 조마조마해하며 두려워하는 마음, 

한숨, 눈물로 범벅된 축제. 

그것은 분명 축제이긴 하나 

말씀과 삶을 빚어 만든 고난의 떡을 먹고 마시면서 

축하하는 무교절이다.


자신의 구원이 누군가의 희생(죽음)을 재료로 창조된 것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들의 축제에는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다. 

자신의 행복과 기쁨과 환호가 

누군가의 불행과 슬픔과 비통으로 이루진 것임을 인정하는 절제된 태도, 

그러면서도 자신의 행복과 기쁨과 환호를 비하하지 않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들의 축제는 조용하면서도 유쾌하다. 

소박하지만 풍성하다.


그와 같은 고난의 축제가 인생 내내 지속되기를! 

유교병을 먹고 싶은 욕망에 저항하면서 

지속적으로 누룩을 제거하기를! 

키리에 엘레이손!

 





#May. 15. 2021. 사진 & 글 by 이.상.예.


 

 

 

'그 여자의 보물창고 >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만나(manna)  (0) 2021.05.22
순종은 믿음을 낳고  (0) 2021.05.20
일찍이 일어나  (0) 2021.05.08
나의 애굽C  (1) 2021.05.01
출남양주  (0) 2021.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