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창고지기들 2020. 11. 27. 12:44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소설이라는 텍스트는 

대강 두 개의 진영을 갖는다. 

하나는 말하는 편이고, 다른 하나는 듣는 쪽이다. 

작가는 화자를 통해 말을 쏟아내고(쓰고), 

독자는 청자로서 그것을 듣는다(읽는다). 

이 두 진영은 확고해서 

역할을 바꿔가져 본적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는 좀 다르다. 

화자라는 전형에서 벗어나서 

그 누구보다 청자인 것이다. 

청자로서 작가는 

수많은 화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편집하여 

제 3의 청자인 독자에게 그것을 들려준다. 

말하자면, 작가는 일종의 녹음기로써 

스스로 주체의 왕좌에서 내려와 

겸손한 종(매개체)이 된다. 

오직 진실을 들려주기 위해서 작가는 

기꺼이 주체 혹은 화자라는 

거대한 특권을 포기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지. 

고통스러운 이야기 따위는 들으려고 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더더욱 이 일을 

멈출 수 없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본서 중에서


작가는 2차 세계 대전에 참가했던 

소련(!) 여성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이 겪었던 전쟁을 인터뷰하고, 

그것을 한데 묶어 꾸준히 출판해왔다. 

그것이 점차적으로 유명세를 얻게 되자, 

그녀의 작품들은 ‘목소리 소설’ 

혹은 ‘소설-코러스’라는 새로운 장르로 불리게 되었다. 

그와 같은 꾸준한 노력과 출판, 

그리고 성공적인 판매 덕분에 작가는 

많은 상과 더불어 2015년 노벨문학상 까지 거머쥐었다.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고, 

필생의 노력으로 세상에 선보이고 들려주었던 

그녀의 노고는 치하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여자들이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원치 않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선물하는 존재. 

여자는 오랫동안 자신 안에 생명을 품고, 

또 생명을 낳아 기른다. 

나는 여자에게는 죽는 것보다 

생명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 가혹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본서 중에서


중학생 때까지 정기적으로 

반공 영화를 강제로 관람해야만 했다. 

냉전시대의 공교육은 얼마나 집요했던지 

반공의식을 꼬맹이들에게 주입하기 위해서 

폭력적인 전쟁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물론, 효과는 탁월했다. 

그래서 공산당은 밑도 끝도 없이 

무조건 나쁜 놈들이었고, 

전쟁은 그것보다 열배는 더 나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책속의 이야기들이 

내게는 별로 새로운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처음 책 앞에서 머뭇거렸던 것은 

너무 잔인해서 읽기 괴로우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작가의 자체 검열을 통해 

어느 정도 멸균상태로 출판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는 어렸을 때 억지로 봤던 전쟁 영화 장면들이 

악랄하게 각인되어 있는 까닭이었을 것이다. 

여성의 시각에서 들려온 전쟁의 이야기가 

전쟁 영화를 관람했던 나의 기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처음엔 요상스러웠다. 

그러나 후에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 나도 여자였지!’ 

그러고 보니, 그 시절 보았던 전쟁 영화의 내용(명분이나 

천신만고 끝에 얻은 승리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잔인했던 장면과 

잔혹함 속에도 빛났던 인간다움이나 

혹은 수치스러움 만이 아롱져있을 뿐이다.


작달막한 하진군 방에는 

커다란 지도가 두 개 걸려있다. 

하나는 세계 지도이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 지도다. 

어느새 취향이라는 것이 생긴 그는 

그 무엇보다 지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위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것, 

구체적인 것을 추상적인 것으로 치환하여 

손아귀에 넣는 것을 즐거워하는 그인 것이다. 

반면, 나는 아래에서 구체적인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그리고 찬찬히 눈여겨보는 것을 좋아한다. 

체질은 썩 비슷하나 취향은 전혀 다른 아들을 보면서, 

남자와 여자의 일반적인 차이와 다름을 실감한다. 

즐거운 일이다. 

아마도 전쟁에 대해서도 그와 나는 

퍽 다르게 생각하고 느낄 것이다.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이야기를 해주더라고…… 

자기들이 어떻게 콜호스로 내몰렸는지. 

얼마나 무자비하게 탄압을 받았는지…… 

스탈린이 어떻게 사람들을 굶주림으로 내몰았는지 

이야기하면서 그들은 그걸 대기근이라 불렀어. 

미쳐버린 엄마들이 자기 아이들을 먹기도 했다면서…… 

우크라이나는 작은 나뭇가지 하나만 심어도 

버드나무가 자랄 만큼 비옥한 땅이지. 

오죽하면 독일군 포로들이 그 흙을 

소포로 싸서 집으로 보냈을까. 

정말 기름진 땅이야. 

흑토도 1미터나 되게 깊고, 

땅은 풍요롭기만 했지. 

-본서 중에서


우크라이나 이야기가 나와서 

더 흥미로웠던 것은 사실이다. 

작가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벨라루스인이었는데, 

책속에 등장하는 지명들 중 상당수가 익숙한 곳이었다. 

리포브나 오데사, 하리코브, 지토미르 같은 지명이 나오면 

그곳의 정경을 떠올리기도 했다. 

물론, 전후에 복구가 된 도시의 정경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아가 ‘우 보이느이 니에 젠스코에 리쬬(전쟁에는 여자의 얼굴이 없다)’ 

책의 원래 제목 정도는 읽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정도의 

러시아어를 알고 있어서 독서가 흥미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20차 당대회에서 흐루쇼프가 

스탈리의 과오를 성토하는 발언을 듣고서 

나는 병을 얻어 몸져눕고 말았어. 

그 모든 게 사실이란 걸 믿을 수가 없었지. 

전쟁터에서도 늘 ‘조국을 위해! 스탈린을 위해!’ 라고 

소리 높여 외치던 나인데.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냥 내가 믿은 거지…… 

그게 바로 내 삶이었다고…… 

-본서 중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우크라이나의 대기근인 

홀로도모를 모르는 소비에트 연방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스탈린이 계획적으로 만들어낸 기근으로 

굶어 죽었다는 사실을 듣고서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토록 믿었던 스탈린에 대한 신념이 환상임이 밝혀지는 순간, 

그들의 희생과 죽음은 한 순간에 헛된 것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도 똑똑히 알게 되었다. 

히틀러 못지않은 스탈린이라는 사실을. 

단지 스포트라이트가 히틀러에 집중된 탓에, 

스탈린의 만행이 어둠속에 조용히 묻혔을 뿐이라는 것을.

 


당신한테 말하는데,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 

분하고 억울했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전쟁에서 남자들은 따뜻하고 선량했어. 

다른 모습은 본 적이 없어.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차라리 아무 말 않겠어…… 아무 말도…… 

-본서 중에서


전쟁은 남자의 일이라는 생각이 만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속설일 뿐이다. 

기껏해야 반쪽짜리 진실이다. 

남자가 주도하고 실행한다는 점에서 맞는 말이나, 

그것의 파장은 인간 전체와 

나아가 자연까지 몽땅 뒤집어 놓는다. 

결국, 전쟁은 남자의 일이 아니라 피조물의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게 전쟁은 남자의 일이어서 

전쟁의 피해는 인류전체와 자연계가 똑같이 짊어져도, 

전쟁의 영광은 오롯이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된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똑같이 고생하고 희생한 

여성들과 아이들과 자연과 

전쟁의 영광을 나눠 갖지 않으려 한다.


여성과 영광을 나누려 하지 않는 분야가 어디 전쟁뿐일까! 

그래서 나는 불공평한 나의 세상에 대입해서 책을 읽기도 했다. 

연대 의식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공감. 

그것만으로도 독서의 의의는 충분했다.

 


전쟁터에서는 사람의 영혼마저 늙어버리지. 

전쟁이 끝나고 나는 다시는 젊음으로 돌아갈 수 없었어…… 

그게 제일 중요한 점이지. 내 생각엔 그래…… 

이제 와서 모든 걸 돌이켜보면, 

그 때 나는 내가 아니었던 것 같아. 

어느 다른 소녀였지…… 

우리 야이기는 꼭 안 써도 돼…… 

우리를 잊어버리지만 마…… 

당신과 내가 이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눴잖아. 

같이 울었고. 그러니까 헤어질 때 뒤돌아서 우리를 봐줘. 

우리들 집도. 낯선 사람처럼 한 번만 돌아보지 말고 

두 번은 돌아봐줘. 내 사람처럼. 

다른 건 더 필요 없어. 뒤돌아봐주기만 하면 돼…… 

-본서 중에서


우크라이나 역사박물관에서 보았던 

네일 케어 도구 세트를 떠올려 본다. 

손톱 손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 속에서 자라난 그녀가 

예쁘게 손톱을 손질한 뒤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남자들이 모두 전쟁의 이슬로 사라진 탓에, 

남은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맨손으로 땅을 일구고, 

폭격으로 쓰러진 집들을 일으키면서, 

치명상을 입은 나라를 인공호흡으로 살려놓은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기억해본다. 

비록 그들은 떠나온 나이지만, 잊지 않기로 한다. 

가끔씩 뒤돌아서서 봐주기로 한다. 

한 번만 아니라, 두 번, 

아니 여러 번 뒤돌아봐주기로 한다.


지금 나는 마치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어느 노병(老兵)처럼 느껴진다. 

18년간의 해외 유학과 선교 생활이 

내겐 전쟁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간 겪었던 낱낱의 사연들은 

책속의 여인들처럼 일단은 묵혀두기로 한다. 

전쟁터에서는 죽는 것이 두려웠고, 

전쟁이 끝나자 살아갈 일이 두려웠다던 

그녀들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전쟁 같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 두려움을 딛고 

소망과 믿음이 주는 용기로 

사랑하며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전쟁터에서 조차 빛나는 

고결한 인간다움일 테니. 

키리에 엘레이손!



#Nov. 27. 2020.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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