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그리스 로마 신화

창고지기들 2020. 7. 18. 15:58

 

 

 

 

 

토마스 불핀치의 책,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대강 캐릭터 때문이다. 

참신한 캐릭터들의 향연인 까닭에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유불급은 옳은 편이다. 

많아도 지나치게 많은 캐릭터들의 대 환장 파티는 

피곤하다 못해 괴로운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다소 엽기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을 위한 교양 도서목록에 

<그리스도 로마 신화>가 끼어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렵 채집 시기를 지나고 있는 그들에게 

책 속의 무수한 신(神) 캐릭터들이야 말로 

매력적인 채집 대상일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미 수렵·채집기를 한참 지나쳐 버린 

중년의 독자, 뭐가 되었든 하나를 오래도록 

자세히 보는 것이 편하고 익숙한 내게는

과다한 캐릭터들이 힘에 부친다. 

물론이다.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이미 중학생 시절에 읽은 바다. 

동네 서점에서 구입한 <마당 문고>판으로 

읽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재독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단은 그럴싸하게, 

어느 분야에서든 

레퍼런스가 되는 내용이니 만큼 

좀 더 확실히 알고 싶은 

학구열(?!) 때문이었다고 하자. 

책속의 내용은 대부분 알고 있는 것들이었으나, 

역시나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어벤져스나 X맨과 같은 히어로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 캐릭터들과 비슷한 부류다. 

사람과 같은 성정을 가졌으나, 

사람의 것일 수 없는 특출한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자타공인 수학 천재, 

빼어난 미색을 지닌 미인(남자든 여자든), 

탁월한 육체적 능력자(운동, 체육 등),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음악가나 미술가 등등 

영화나 문학 속에 종종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신화 속 신들의 보급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호기심과 부러움으로 

그들 캐릭터들을 찾아보는 것이겠다. 

그리고 비극이 그들 특출한 캐릭터들에게나 

가당한 장르임을 새삼스러워 하면서,

어느 분야에서든 특별한 사람은 

이래저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당연지사로 

비겁한 위안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4차 산업시대에도 

없어지지 않을 직업군들 중에 드는 

연예인, 예술가, 운동선수가 

신화 속 캐릭터들과 닮았다는 점은 퍽 흥미롭다. 

그렇게 앞으로 무슨 시대가 되든지 

신화는 제 자리를 잘 지키며 연명할 테다.

신화의 전통적인 해석 방식은 알레고리다. 

구체성 속에서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뜻을 

뽑아 풀어내는 것이다.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나 사건들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싶어 하는 인간 욕구의 반영이다. 

오래전 신학계 알레고리의 대명사인 

오리겐(위대한 신학자)을 폄하했던 

교수의 가르침이 문득 생각난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인정받아 마땅한 

해석방식인 오리겐의 알레고리, 

그것의 가치가 재평가 될 날은 

분명히 오고야 말 것이다. 

 


“재난에 머리를 숙이지 마라. 

그럴수록 더욱 꿋꿋하게 전진하라.” 


그대가 이 고난을 꿋꿋하게 견디어낸다면 

신들의 적의도 사라질 것이다. 

-본서 중에서

온갖 저주와 훼방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견디며 전진하는 자는 

적대적인 신들 마저도 감복하게 만든다는 내용은 

신화 속 주요 테마들 중 하나다. 

사지로 밀려 떨어진 자들 중에서 

살아 돌아온 자가

결국 왕이 된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낙담이나 좌절, 혹은 청승이나 자기연민 따위는 

개(미안!)에게나 줘버리고 

끝까지 버티면서 싸우는 자를 

이겨낼 장사는 없다는 이야기가 격려가 된다. 

그런 끈질긴 인내가 우리에게도 허락되기를.

보여주는 내러티브가 트렌드인 오늘날과는 달리, 

19세기 중반에 출판된 이 책은 

들려주는 내러티브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였을까? 

편집자는 현대에 발맞추어 책을 편집했다. 

들려주기 일색의 내러티브 사이사이에 

무수한 서양화들을 삽입한 것이다. 

신화 속 이야기들이 

과거 회화의 단골 소재였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편집자는 이야기는 들려주고, 

그림은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림으로 가시화된 이야기들은 

미술 작가 개인의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내 것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살짝 언짢아도 했던 것 같다. 

책 속의 명화들이 

나의 상상을 침해하다 못해 

아예 포기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ㅋ

이번에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물리적으로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하드커버의 책이다. 

도저히 들고 읽을 수 없는 중량감 때문에 

책 받침대에 모셔놓고 읽어야만 했다. 

읽는 내가 아니라 

읽히는 책이 독서의 자세를 결정하는 바람에 

살짝 짜증이 나기도 했었다.

 

그렇게 책을 책 받침대에서 치우고 나니, 

‘페넬로페의 직물’이 남았다. 

영원히 끝마칠 수 없는 일을 상징하는 것이 

페넬로페의 직물이다. 

그것이 내게는 묵상이기도 하고, 

찬양이나 기도이기도 하고, 

또한 글쓰기이기도 하다.

어지럼증으로 앉아있기도 힘들고, 

집중하기는 더욱 힘든 

‘코비드 블루’ 시기를 지나다 보니 

불안감이 종종 무릎을 넘어 바짝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저항할 힘을 소망하게 되는 것일 테다. 

끝마칠 수 없는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기를!

 



#Jul. 17. 2020.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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