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그러나...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창고지기들 2012. 3. 7. 02:15

 

 

 

 


#1. 두려움은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이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작품으로

단 번에 뇌리에 각인되었던 영화 제목이다.

허나, 나는 이 영화를 본적이 없다.

불안하기만 했던 청춘 시절,

제목이 일으키는 묘한 감성을

그저 키치적으로 즐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영혼을 잠식하는 것이

어디 불안뿐이겠는가?

불안의 자매들인

두려움, 염려, 근심, 걱정들 역시

영혼을 잠식하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본문에서

두려움으로 인하여 영혼이 잠식당한

한 불쌍한 사람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의 직업은 ‘바로’였다.

그것도 거대한 제국 이집트의 바로 말이다.

 

 

 

 

#2. 바로의 두려움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출 1:15,16)

 

 

이집트의 신(神)인 그는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했기에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치졸한 음모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것일까?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출1:10b)

 

 

애굽의 신인 바로가 두려워했던 것은

이스라엘이 자기를 대적하여

애굽 땅에서 나가는 것이었다.

그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두려움에 대해서

구체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즉, 바로는 이 막연한 두려움이

실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는 한 편,

은밀하게 히브리 산파들을 시켜

갓 태어난 히브리 사내 아기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두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기 위하여

마련했던 비책들이 오히려

그 두려운 일을 기어이 실현시키고 만다.

즉, 바로가 내린 고역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은 하나님은(출3:7)

바로의 음모를 오히려 지혜롭게 이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으로부터 탈출시킬

준비를 차근차근 하셨던 것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바로의 영혼은

썩은 고기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힘없는 히브리 산파들이나 포섭하여

영아살해를 명하는 치졸한 모습으로 잠식되었다.

그에 비하여 히브리 산파들의 영혼은

얼마나 의연한 사자 같은가!

 

그들은 두려움을 피하고자

살인이라는 꼼수를 쓰는 바로가 아니라

두려움 자체이신

생명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바로의 비밀 지령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소명,

즉 생명을 받아내는 일을 계속했던 것이다.

 

 

비밀 살생 요원으로 파견했던

히브리 산파들의 배신으로

자신의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자

바로는 공공연하게

히브리 사내 아기들을 모조리

나일 강에 던지라는 명령을 내리고야 만다.

이 일로 인하여 나일 강에 던져진 모세는

바로의 딸에 의해서 오히려 바로의 궁으로 들어가서

왕자 수업을 받게 되고,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땅에서 탈출시키는

일등 공신으로 준비되고야 만다.

 

그렇게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지혜와(10절)

힘을(11,14,16,22절) 총동원했던 바로는

오히려 그의 두려움을

온 마음과 힘과 정성을 다하여

기어이 실현시키고 마는

어리석고 불쌍한 자가 되었다.

 

 

 

 

#3. 나의 두려움.

 

 

케냐로 온 이후로

가장 확실한 사실은

어느 것 하나 손에 잡히는

확실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신분도, 재정도, 사역도

모두 불확실 속으로 꽁무니를 빼버렸다.

그렇게 모든 것이 불확실함 뒤로 숨어버리자

두려움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확실한 신분을 나타내 주는 주민등록증,

통장의 구체적인 숫자, 보험증,

분명한 사역의 자리 등,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이

낯선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야말로 실체적인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바로가 슬며시 내게 말을 건넸다.

 

 

“너는 지혜롭게 해야 한다.

두렵건대 손에 쥐어지는

확실한 것이 없다면

너는 이 땅에서 쫓겨나게 될 지도 몰라.

그러니 너는 신분에 대해서도,

재정에 대해서도 확실한 안전지대를

네 손으로 직접 획득해서

든든히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바로의 말로 인하여

조금씩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할 때 즈음,

히브리 산파들이 걱정스럽게 내게 말했다.

 

 

“바로의 말을 듣지 마시오.

그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피하려고

온갖 애를 다 쓰다가

결국은 스스로 그 두려운 일을

실현시키고 만 어리석은 사람이니.

명심하시오!

오직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라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두려워할 때,

그 두려워하는 것에 의해서

영혼도 인생도 잠식당한다는 것을 말이오.

허나, 하나님만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으로 인하여 영혼이 잠식당하면

그 영혼도 인생도 영원히 살게 된다오.

십브라, 부아라는 우리의 이름이

영원하신 그 분의 말씀 안에

또박또박 적혀서 영원히 살게 된 것처럼 말이오.”

 

 

 

나는 히브리 산파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불확실함이 주는 막연한 두려움을

조각조각 찢어서 바로의 나일강에 던졌다.

 

바람에 날려 나일강 속으로 사라지는

두려움들을 뒤로 하고 삶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여전히 내겐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내 앞엔

히브리 산파들이 남긴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겨져 있었다.

나는 그들의 발자국 위에

내 발을 살며시 올려놓아 보았다.

그리고 다음 발도 그들의 발자국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 발에 힘을 실었다.

 

 

키리에 엘레이손!

 

 

 

#Mar. 6. 2012.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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