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리벤지 프리(revenge-free)

창고지기들 2019. 12. 19. 16:50







리벤지 프리(revenge-free)



#1. 복수는 나의 것


한 때 환경론자였던 내가 

유럽인들의 기호 식품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다. 

술, 담배, 커피. 

끈질기게 우울한 겨울을 버티기 위해서는 

그것들에 손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태생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유럽인이 아닌 내게 그것들은 별 효용이 없다. 

그럼에도 징글징글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내게도 뭔가가 필요하다. 

아마도 그래서 인 듯싶다. 

요즈음 드라마를 달고 살게 되어 버린 것이다.


중국 드라마에 입문(최근에는 태국 드라마지만;;)한 후, 

시청했던 일련의 사극들은 내용 면에서 대동소이했다. 

선한 주인공들이 대개는 갚거나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를 하는 것이다. 

은혜나 원수를 갚기 위해, 

혹은 가문과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서 

주인공들은 빌런과 전쟁을 치른다. 

특별히, 오랜 기다림 끝에 

원수를 통쾌하게 갚는 장면이 나오면 

시청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래서 대강 60부작을 넘나드는 

멀고도 험난한 여정의 사극을 

끝까지 시청도 하는 것이겠다.


돌이켜 보면, 

원수 갚음에 대한 욕망은 나를 꾸준히 괴롭혀왔다. 

‘복수 시나리오’를 집필한 후, 

정교하게 다듬고 또 다듬으면서 

‘복수는 나의 것’을 꿈꾸곤 했었다. 

그러나 시나리오대로 

복수를 실행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복수할 의지와 능력이 박약해서기도 하겠지만, 

복수의 주인이신 그분에게 매번 설득을 당했기 때문이다.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잠20:22)



#2. 하나님의 심판, 복수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동전에는 양면이 있다. 

한 면에는 유죄, 형벌, 영벌, 고통이 있고, 

다른 면에는 무죄, 구원, 영생, 기쁨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의 다른 이름들 중에는 

‘하나님의 복수’가 있다.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머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계18:15-17상반절)


큰 성 바벨론은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다. 

수 천 년의 역사를 통해 그녀는 

선지자들과 성도들의 피(계18:24)를 마시면서 

부와 권력과 명예를 꾸역꾸역 축적해왔다. 

그런데 수 천 년의 바벨론이 불과 한 시간 만에 

망하게 될 것이라는 전언(傳言)이 도착했다.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복수가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계 18:20, 19:2)


큰 성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다. 

그녀로 인하여 이득을 보았던 치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애통해 하고, 

그녀에게 짓밟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던 자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이렇듯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인 

바벨론의 멸망은 성도들의 구원인 동시에 

하나님의 복수다.



#3. 복수는 그분의 것


이스라엘은 소망한다. 

야웨 그분이 선택하시는 대로 복수하시기를,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수용력은 

이스라엘을 그들의 주요한 임무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진되지 않는 끈덕진 소망을 갖게 한다. 

즉 만약 이스라엘이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길 수 없었고 이스라엘이 원수 갚는 것을 

자신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염려했다면, 

그들은 소망을 품을 힘도 자유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스라엘로 하여금 새 예루살렘에 대해 

자유롭게 소망을 품도록 한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긴 바로 이 수용력이었을 것이다. 

-월터 브루그만의 책, <브루그만의 시편 사색> 중에서


복수를 포기하는 것은 쉬울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고, 

자신을 부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위대하다. 

복수를 하나님께 맡겨드린 채, 

본인들은 오직 회복을 소망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였으니 말이다.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사실상 복수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구원과 마찬가지로 

복수가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실 것을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찾아가 복수를 의뢰했다. 

원수로부터 받은 부당하고 억울한 사연과 함께 

복수에 대한 간절한 요망, 그리고 복수의 구체적인 방법까지 

여호와께 제안하면서 그들은 복수를 어렵사리 끊어내곤 했다. 

시편의 무수한 기도들은 그러한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내게도 받은 만큼, 

아니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고 싶은 

심란한 마음들이 굴뚝이곤 했었다. 

물론, 그런 마음들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복수를 위해서 자신의 전 인생을 제물로 

활활 불태우는 숱한 주인공들을 응원도 하는 것이겠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개인적으로 

현재의 나는 리벤지 프리(revenge-free)다. 

원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원수 갚는 일에서 만큼은 자유롭다.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여러 차례 경험한 까닭이다. 

그래서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누군가의 원수가 되었을 수도, 

혹은 될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

(계22:12)


우리에게 나신 한 아기(사9:6)가 

‘속히’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의 ‘속히’와 우리의 ‘속히’ 사이에는 

엄청난 구덩이가 놓여 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으나(벧후3:8), 

우리에게 있어서 하루는 하루고, 천년은 천년일 뿐인 것이다. 


속히 당도하실 그날에, 그분은 갚아주실 것이다. 

각 사람의 행위대로 원수를 갚아주실 것이고, 

동시에 상으로도 갚아주실 것이다. 

그러니 착한 행위에 집중하기 위해서 

리벤지 프리 상태를 힘써 지킬 일이다. 

애써 지키지 아니하면 복수는

또다시 나의 바운더리로 쳐들어와 

나의 것이 되게 해달라고 무례하게 굴어댈 테니까.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12:19) 




#Dec. 16. 2019.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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