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에 부르는 새 노래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3:3)
새 노래는 최신곡(最新曲)이 아니다.
오히려 한번 쯤 들어봤음직한 클래식한 노래다.
그러나 들어봤다고 해서 누구나 부를 있는 노래 또한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듣고 따라 하기를
반복한 사람만이 부를 수 있다.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처럼.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 40:1-3)
단도직입적으로 새 노래는 구원의 노래다.
그것은 하나님의 행위인 구원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리액션이다.
시편 40편의 시인은 그것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십사만 사천 명 중 하나다.
한 때, 그는 기존의 신학을 전복시키고도 남을 만한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의인의 고난 받음)에
풍덩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런 종류의 늪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외부로부터의 구원을 기다리면서 부르짖는 것이 전부다.
그렇게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인 주님을 부르던
지난한 날들이 시인을 지나쳐 수도 없이 줄행랑을 쳤다.
그 와중에 그의 성대마저 상해버렸다.
입을 벌려 소리를 크게 외쳐도
쌕쌕 소리만 나던 어느 날, 문득 응답이 당도한다.
주의 큰 구원이 이르자, 시인은 마치 뽑기 인형처럼
물컹한 수렁에서 끌어올려져 단단한 반석 위에 세워진다.
커다란 감격이 시인을 사로잡아 버리자,
시인은 노래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된다.
상해버린 성대일지언정 그는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부른다.
목구멍에서 올라온 주체할 수 없는 벙어리 노래,
그 기쁨과 감격의 노래가 바로 새 노래다.
그러므로 새 노래에는 새 신학이 담기지 않을 수 없다.
이전에 알던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혹은 전혀 다른 종류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담겨 있음이다.
그렇게 새 노래에는 고난과 환난을 통해서만
비로소 깨달아지는 하나님이 서려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이와 같은 새 노래, 새 신학을
예전 의식(禮典 儀式)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참여한 성도들은 선배들이 만든
새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른다.
새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그들은
구원의 하나님을 어렴풋이 경험한다.
그리고 구원으로 선배들을 선대하셨던 주께서
자신들의 환난과 고난 역시 외면하지 않을 것을
서서히 확신하게 된다.
그렇게 새 노래를 따라 부름으로써
성도들은 믿음과 소망을 견고케 하는가 하면,
장차 기필코 맞이하게 될 구원을 미리 당겨 경험한다.
동시에 미리 배워둔 새 노래, 곧 구원의 노래로 인하여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견디고 버티게 된다!
요한 계시록의 첫 독자들은 큰 환난의 때를 지나고 있었다.
다시 오시겠다 약속하신 그리스도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교회에 대한 핍박은 날로 악랄하져만 가고,
교회의 목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순교를 당하고,
양 같은 성도들은 권력을 가진 승냥이들에 쫓기고 찢기는
참혹한 현실이 끝날 줄을 몰랐다.
이렇게 가다가는 교회의 명줄은 모조리 끊길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멸망하고 말 거라는
악성 루머는 이미 퍼질 대로 퍼졌다.
배교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복음으로 인하여 밧모 섬에 유배당한
사도 요한은 묵시라는 장르를 통해 성도들에게 신신당부한다.
지금의 고난과 환난은 장차 있을
천상에서의 예배에서 부를 새 노래를 배우는 시즌이라고,
십사만 사천 명 중의 하나인 너희는
장차 임할 구원의 때에 주님을 향해 부를 찬양을 예비하라고.
그러나 고대 그리스는 인간 실존에 본질적인 두 특징인
믿음과 희망을 완전히 무시하고 ‘믿음’을 가지는 것을
매우 공동적이지 못한 덕으로 평가절하 했으며
‘희망’을 판도라 상자에 있는 악 중의 하나로 간주했다.
이 세계에서 믿음을 가질 수 있고 이 세계를 위한
희망을 가져도 된다는 사실에 대한 가장 웅장하면서도
간결한 표현은, 복음서가 그들의 ‘기쁜 소식’을 천명한
몇 마디 말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도다.”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중에서
대림절이 시작되었다.
깊고 어두운 수렁 같은 세상을 맞서게 하는
지독히 연약하고도 가장 강력한 힘이 은혜로 주어졌다.
한 아이가 우리 가운데 나신 것이다.
그 아기로 인하여 힘겨운 현실을 버틸 수 있는 힘,
그리하여 결국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제공받는 것이다.
얼마 전 싸구려 기타 하나를 장만 했다.
암울한 현실, 열매 없는 척박한 황무지 속에서
지체들과 함께 새 노래,
곧 구원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기 위해서.
그렇게 구원의 믿음을 앞으로 전진시키는 동시에
구원의 소망을 당겨 와 현재 이곳에서 미리 누리려고
애를 쓰는 중이다.
부디...
지체들과 함께 부르는 새 노래가
최후 승리의 큰 기쁨을 기어코 불러오기를!
#Dev. 3. 2019.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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