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클라우드의 책, <크리스천을 위한 마음 코칭>을 읽고.
더러 그런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치고받고 싸우다가 결국 친구가 되는 책.
이 책 <크리스천을 위한 마음 코칭>이 그런 류다.
티격태격 다투다가 얄궂은 일이 일어났다.
‘있는 모습 그대로’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끈끈한 애정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것은 다음이었다.
미운 정이 더 무섭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책과 다툰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은혜’와 ‘진리’라는 신학적 언어를
심리학적인 용어로 축소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구원의 책인 성경을
심리학의 레퍼런스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쟁점은 책과 친해진 뒤 대부분 이해되었다.
그것은 기독교 내에서 심리학의 확실한 자리매김을 위한
저자의 치열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원칙과 허용을
각각 진리와 은혜라는 신학적인 단어로 치환했고,
심리학의 개념과 필요를 성경 본문을 통해서 펼쳐놓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와 진리라는
거대한 언어를 무참하게 축소시켜 사용한 것은 여전히 용인할 수 없다.
‘다른 단어를 선택했다면...’ 이라는 아쉬움이 한 가득인 것이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건강한 성장에 필요한 세 가지 조건,
곧 은혜와 진리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어서 2부부터 5부까지는
건강한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한 네 가지 과제인
다른 사람과의 유대감 형성, 다른 사람과의 분리,
선과 악의 균형 있는 분별,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개괄적으로(!) 설명해준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4부와 5부였다.
선과 악이 절묘하게 섞여 있는 자신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과
성숙한 어른이 무엇인지,
그리고 성인이 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일은 퍽 유익했다.
스스로 나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자신이 뭔가 잘못된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그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거듭 잘못을 고백하고, 성경도 읽어 보고,
지역 사회의 노숙자들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용서받았다는 느낌은 충분히 들지 않는다.
문제의 뿌리는 죄가 아니라 고립감과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본서 중에서
다른 사람과 유대감 형성에 실패했을 때 생기는 파장 중 하나가
자기 비하와 죄책감이라는 사실 앞에서 문득 멈췄다.
지난 날, 그녀의 끝없는 자기 비하와 죄책감이
고립감과 외로움에서 나온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나아가 선교지에서 나를 괴롭혔던 것,
곧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둥둥 떠다닌다는 느낌(비현실적인 느낌)이
유대감 결핍이 만들어낸 증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선교지에서 나는 고립감과 외로움으로 얼마나 쩔쩔 맸던가!
한편으로 왜곡된 생각은 관계 속에서 학습된 것이므로
관계를 통해서만 다시 배울 수 있다.
따라서 과거에 잘못 배운 것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계가 필요하다.
그 새로운 관계를 통해서만 참 자아가
은혜와 진리 가운데 연결 될 수 있고 변화될 수 있다.
-본서 중에서
안식년에 선교지(사역지)를 떠나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일을 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 반드시 떠나야 하는 것이다.
선교지에서의 관계들을 통해 잘못 학습된 것들을 파악하고,
교정하고, 올바르게 변화시키기 위해서 떠남은 매우 필수다.
그렇게 훌쩍 떠난 안식년에 새로운 만남들이 허락되었다.
그분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새로운 관계를 통해서 조금씩 치유되고 회복됨을 느낀다.
서서히 새롭게 되어가는 중인 것이다.
자녀가 실패하면
전적으로 자기 잘못이라고 느끼는 부모들도 많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책임을 부정하고
자녀를 무능하게 만드는 처사다.
자녀가 스스로 인생을 책임질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만일 부모가 자녀들과 오랜 시간에 걸쳐 좋은 관계를 형성했다면
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부모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통제권은 거의 없다...
부모가 한계선을 정해 주고 일의 결과에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이미 성인이 다 된 자녀를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부모 자신을 통제하고
자녀들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통제할 수 있을 따름이다.
-본서 중에서
이 책의 가장 큰 소득은
이제 막 청소년기에 들어선 하진군의 경계선을 확실히 하고,
존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약하다는 핑계로
그의 경계선을 번번이 침범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그의 바운더리를 존중해주는 한편,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고 그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또한 도움을 요청할 때는 언제든지 도와줄 것이며,
그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을
응원해 줄 것이라고도 말해주었다.
하진군이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그분의 권위에 스스로 순종하는
멋진 어른으로 장성해나가길 간절히 소원하게 된다.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은 이런 어린아이 같은 사람에게
부모 노릇하는 것이 자신의 직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서 성숙함으로 인도하는 대신
직접 돌보고 자신의 곁에 붙잡아 놓는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가르침이나 교리에도 질문을 하지 않고
‘누구누구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옳을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유명하거나 권위 있는 인물이 한 말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본서 중에서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만났던 영적 지도자들은
대부분 부모 노릇을 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너희는 아무 것도 모르니 자기만 믿고 따르라는 식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이 유쾌한 경험일리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았던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선택하는 것을 금기했던 분위기 탓에
지도자들의 말을 받아 적어야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을 둘러 살펴본다.
말씀 묵상을 통해서 비로소 그분의 권위만을 인정하게 된 지금,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옛날의 아픔을 오히려 감사하게 된다.
다른 의견을 냈다고 도끼눈을 휘두르면서
핍박했던 자에게 굴복하지 않고,
훌쩍 떠날 수 있었음이 감사하다.
그렇게 나는 상처를 받고
또 그것을 이겨내면서 어른이 되고 있는 중이다.
책의 저자 헨리 클라우드와는 구면이다.
그의 대표작 <No 라고 말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을
이미 오래 전에 읽은 터였다.
어쩌면 그것의 ‘바운더리’라는 퍽 훌륭한 개념을 통해
수지맞았던 탓에 이것을 끝까지 참고 읽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끝까지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자신을 소유하지 못해서 고통을 받고 있는 자들과
함께 읽으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픈 생각을 슬쩍 해본다.
물론, 기회가 열린다면.
#Oct. 31. 2016.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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