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작기 아이(Ai)
전조작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는 의뭉스럽지 않다.
투명하게 어리석어서 많이 사랑스럽고, 때때로 안쓰러울 뿐이다.
피아제(Piaget)가 발명한(?!) 인지 발달이론에 따르면
전조작기(2-7세)의 아이는 꿈과 환상의 나라에 사는 주인공이다.
그 곳의 특징은 온갖 사물들이 살아 숨 쉰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기중심적 사고와 직관적 판단으로
그들을 보고, 이해하고, 관계 맺는다.
사물들은 이름을 불러주면
언제든지 꽃으로 변하도록 강요를 받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Ai)를 정탐하고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여호수아 7:2-3)
여리고(Jericho)에 비하면 아이(Ai)는
어른의 손을 잡지 않고서는 걸음마도 떼기 어려운
꼬마에 지나지 않았다.
거대한 여리고를 단번에 무너뜨렸던 전력(前歷)은
아이를 손에 넣는 것을 시간문제로 여겼다.
이러한 자신감은 전쟁에
분명 득이 되는 것이었으나,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우월감이 형제인 방심(放心)을
이스라엘에게 슬쩍 밀어 넣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식은 죽을 먹다가 사래에 걸리고 말았다.
꼬마 아이(Ai)에게 혼쭐이 났던 것이다.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지라(여호수아 7:4-5)
기가 막힌 대 역전승이었다.
반전의 주인공이 된 아이는 믿을 수가 없었다.
여기가 무덤이 되겠거니! 라며 싸웠는데,
정작 무덤에 묻힌 것은 적군 이스라엘이었다.
세상을 다 이긴 듯 기뻐 날뛰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시 뿐이어야 했다.
이스라엘의 손실은 고작 36명이었을 뿐,
완전히 멸망당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전조작기는 성능이 꽤 좋았다.
재빠른 자기중심적, 직관적인 판단은
그들로 자신의 전투력을 높이 사게 하는 한편,
이스라엘을 얕보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여호수아 7:11-12)
아이의 판단은 틀렸다.
그들의 승리는 자신의 능력과
상대의 무능이 빚어낸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로운 사랑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과의 언약을 어기고,
탐심과 파트너가 된 아간의 죄를 물어
아이에게 잠시 승리를 안겨다 주셨던 것이다.
승리의 유통기간이 대단히 짧을 것은 당연했다.
이스라엘이 죄를 해결하기만 하면, 아이가 끝장날 것은 뻔했다.
하지만 자기중심적 아이에게는 그것을 볼만한 눈이 없었다.
아이의 결국은 이미 구체적 조작기(7-11,12세)에 들어선
기브온 사람들과는 달리 전멸뿐이었다.
한편, 기브온 사람들은
구체적 조작기의 특징인 서열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여호와가 가나안의 잡신들보다 위대하다는 서열화가 마무리 되자,
그들은 평화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사기를 쳤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뒷목을 잡아야했지만,
조약에 따라 그들을 살려두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 왕이 이(밤에 여호수아 골짜기로 들어온 것)를 보고
그 성읍 백성과 함께 일찍이 일어나 급히 나가
아라바 앞에 이르러 정한 때에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나
성읍 뒤에 복병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거짓으로 패한 척하여
광야 길로 도망하매 그 성읍에 있는 모든 백성이 그들을 추격하려고 모여
여호수아를 추격하며 유인함을 받아 아이 성읍을 멀리 떠나니
아이와 벧엘에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으며
성문을 열어 놓고 이스라엘을 추격하였더라(여호수아 8:14-17)
쳐부술 수 있다는 자만심과 한시라도 빨리 해치우고 싶은 조급함이
아이를 섣불리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 결과 치명상은 아이의 몫으로 떨어졌다.
줄행랑을 치던 여호수아가 갑자기 아이를 향해 돌아섰을 때,
아이 성은 이미 이스라엘의 복병들 수중에 있었다.
졸지에 여호수아와 복병 사이에 끼인 아이에게는
후회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아이는 순식간에 전멸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복병이라는 변수를 계산할 수 없었던
전조작기 아이는 그렇게 역사 속에서 무참히 사라져갔다.
자기 과신은 사고(事故)의 전조(前兆)다.
더욱이 그것이 조급함을 만나기라도 하면,
사고는 비바체로 들이닥친다.
그것의 결과와 사후 처리는 혹독한 고통을 선사하기 마련인데,
책임지고 수습하는 오랜 과정은 눈물의 소금기로 가득해진다.
나이를 먹고 보니,
전조작기 아이(Ai)를 쉽게 보아 넘기지 못하겠다.
아이와 나는 전조작기 동기인 것이다.
전조작기는 뻥튀기 기계와 같아서,
대수롭지 않은 일들도 커다란 승리감으로 부풀게 하여 도취시킨다.
그것이 축적되어 쌓이다 보면
자기 과신이라는 심리적 기제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은 우리를 번번이 실패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다.
아이(Ai)의 멸망 앞에서 나는 골똘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의 자잘했던 승리들이
이웃을 다루시기 위한 그분의 방법은 아니었는지.
작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좀 더 큰 그림을 놓친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숨어 있던 복병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안식을 위해 카탈리나(Catalina)에 잠시 닻을 내렸다.
카탈리나에는 꽤 많은 창문들이 있다.
연일 강수량 0%의 날들을 배경으로
퍽 건조하고 조용한 세상은
하루도 빠짐없이 그것들을 통해 꾸역꾸역 들어온다.
덕분에 마음의 창은 덜컹거리길 쉬지 않는다.
마음의 창밖은 사고 수습으로 한창이다.
마치 졸음운전과도 같은 자기 과신이 일으킨 사고로
건장했던 승리감이 아픈 후회로 쪼그라드는 중이다.
전멸한 아이를 보내며 통곡하는 것이다.
키리에 엘레이손!
#Aug. 22. 2016.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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