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해할 일 없는 인생
버터를 좋아한다.
연노란 빛깔도 예쁘고, 부드럽고 기름진 감촉도 좋다.
예쁜이의 실체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건강에 썩 도움이 되지 않는 지방 덩어리.
그러나 감각적 쾌락은
엄연한 사실 앞에서 절대 쪼는 법이 없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버터를 탐한다.
음식에 넣으면 감쪽같이 사라져버려도
그것의 체취는 오래 남는다.
고소한 냄새.
내가 좋아하는 것은 특별히 그것이다.
버터와 함께라면 마음 놓고 고소해해도 되는 까닭이다.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에스겔 29:3)
이스라엘의 뿌리가 뽑혔다.
복잡하게 엉켜있던 잔뿌리들이 강제로 쪼개졌고,
아무렇게나 흩어져 파종되었다.
이제 그들 삶의 목적은 생존 자체가 되었다.
역사가 안중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누구도 아닌 여호와의 백성이었다.
몸의 뿌리가 뽑혔을지언정
역사의 뿌리까지 뽑히는 일은 없어야 했다.
기억마저 사라지면
그들은 더 이상 그분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까닭이었다.
이스라엘이 쌀 뜬 물처럼 하얗게 역사를 잊어가고 있었을 때,
에스겔이 등장했다.
포로기라는 완전히 새로운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역사하고 계시는 여호와를 상기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역사 속으로
다시 편입시키기 위해서.
역사의 심판관인 여호와의 손가락이 애굽을 가리켰다.
그녀는 그 옛날 앗수르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교만의 소유주였다.
여호와는 오만한 그녀가
결국 앗수르 꼴이 되고 말 것이라는
얼음장 같은 저주를 퍼부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앗수르)가 스올에 내려가던 날에
내가 그를 위하여 슬프게 울게 하며 깊은 바다를 덮으며
모든 강을 쉬게 하며 큰물을 그치게 하고
레바논이 그를 위하여 슬프게 울게 하며
들의 모든 나무를 그로 말미암아 쇠잔하게 하였느니라(에스겔 31:15)
역사의 주관자이신 여호와는 강심장이 아니었다.
수많은 나라들을 짓고 부수기를 반복할 때마다
그분은 깊이 괴로워하셨다.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곧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은
그분의 성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분은 샤덴프로이데를 미워하신다.
그래서 그것을 재판의 중요한 증거로 채택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이다.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당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동방 사람에게 기업으로 넘겨주리니(에스겔 25:3-4)
애도하는 사람 앞에서
웃고 떠들며 잔치를 벌이는 것은 무례한 짓이다.
게다가 역사의 주관자가 애가를 부르고 있는 때에,
‘아하! 좋다’고 고소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여호와께서는 이방 나라인 앗수르의 멸망을 보고 슬피 우셨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멸망이야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방 나라의 멸망도, 이스라엘의 패망도
고소해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주관자를 믿고 사랑하는 자라면,
그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자 한다면,
그분처럼 침통해 하는 것이 마땅하다.
고소해할 일이 없는 것이 성도의 인생이다.
정녕 고소해 하고 싶거든 부엌에나 가볼 일이다.
세상 그 누구도, 심지어 그가 명백히 악한 자라 할지라도
고소함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그분 보시기에 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그분을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할 때,
낮은 자존감이나 원한과 복수심은 제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음흉한 샤덴프로이데는
언제고 불쑥 들이닥칠 것이고,
은근히 그것을 즐기고 싶은 욕망은
두 눈을 질끈 감게 할 것이다.
키리에 엘레이손!
#Apr. 4. 2016.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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