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il Shop KENYA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려 나오라 하매(마태복음 25:1-6)
청승들이었다.
땀 때문에 신부화장은 벌써 번졌고,
깨끗하던 신부복도 군데군데 얼룩져있었다.
램프와 함께 여분의 기름병까지 들고 걸었던 탓이었다.
오로지 램프만 들고
우아하게 걷던 신부들은 양미간을 찌푸렸다.
신부답지 못하다고 수군거리면서
그들은 신부 대기실로 냉큼 향했다.
램프와 기름병까지 챙긴 신부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들을 뒤따를 뿐이었다.
램프만 들고 있던 신부들의 수다가 한창이었다.
신랑의 외모와 재력에 대한 기대와 결혼 생활에 대한
기분 좋은 걱정으로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말이야~”, “내가 원하는 건~”, “나의 필요는~”….
그들 이야기의 주어는 온통 ‘나’뿐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신랑’을 주어로 삼는 법이 없었다.
웃고 떠들면서 그들은 ‘나의 소원과 설렘’을
풍선처럼 부풀려갔다.
뒤늦게 도착한 신부들은
서둘러 램프와 기름병을 탁자 위에 놓았다.
재빨리 옷의 먼지를 털어낸 후,
땀으로 번진 서로의 화장을 고쳐주었다.
자리는 대부분 램프만 들었던 신부들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하는 수 없이 겹쳐지듯 붙어 앉았다.
그들 중 누구도 말을 보태는 이는 없었다.
같은 모양새로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모은 채,
신랑이 도착하기만을 고요히 기다렸다.
제법 늦은 저녁이 되었다.
여전히 신랑은 도착하지 않았다.
재잘대던 소리가 사라진 대기실은
어느새 귀뚜라미의 차지가 되었다.
제법 우렁차게 연주되긴 했지만, 그것은 차라리 자장가였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었던 화장과 치장, 긴장과 설렘,
그리고 오랜 기다림으로 피곤했던 탓에
신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졸았던 것이다.
이윽고 깊은 밤이 완연해지자 대기실의 조명이 희미해졌다.
램프의 기름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신랑이 도착한 것은 그 즈음이었다.
“신랑이 도착하셨습니다. 어서 맞으러 나오십시오!”(마태복음 25:6)
화들짝 놀라 깬 신부들은 꺼져가는 램프를 발견했다.
기름병을 들고 온 신부들은 서둘러 램프에 기름을 주유했다.
미처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신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불을 끄느라 발을 동동 구르면서
기름을 나누어달라고 보챘다.
그러나 그들이 나누어 받은 것은 기름이 아니라 충고였다.
“같이 쓰기엔 부족한 양이야.
차라리 기름 파는 곳에서 가서 사는 게 어때?”(마태복음 25:9)
사실, 기름은 절대로 나눌 수 없는 것이었다.
병에 담긴 것은 기름이 아니라
신랑을 아는 지식이었던 것이다.
개별적이고도 인격적 관계를 통해 알게 된
신랑을 아는 지식(신랑은 항상 더디 오신다!)은
자신의 램프를 제외하곤 무용지물일 뿐이다.
나누어 줘봤자 다른 이의 램프에서는
결코 빛을 낼 수 없는 것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마태복음 25:12)
굳게 닫힌 혼인 잔칫집의 문안에서
신랑의 냉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뒤늦게 램프에 기름을 채운 뒤 문을 열어달라고
조르던 신부들은 거절을 당했다.
만사에는 기한과 때가 있다는 신랑의 말을
서둘러 귀담아 듣지 못한 탓에 문전박대를 당했던 것이다.
2.
“설마요! 내 하나님은 나만 사랑해주고, 나만 위해주시는 분이라고요!”
별로 크지 않은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곧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그려졌다.
나의 기름이 그녀에게는
쉰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내 기름으로는 그녀의 램프를 도저히 밝힐 수 없었다.
나는 그녀가 걱정되었다.
그 연륜, 그 경험, 그 이력에도 불구하고
혹시 램프만 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름을 준비하고 있기는 한가? 하는
의구심과 실망감이 젖어 들었다.
오일 샵 케냐(Oil Shop KENYA)는 대단한 원유 저장고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고,
때로는 그 이하인 가공되지 않은 신선한 기름이
값싸게 제공되는 곳이다.
그러나 램프에 넣어 사용하기 위해서는
값비싼 공정(工程)을 거쳐야만 한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램프를 밝힐 기름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얼굴과 손발은 의례 시커먼 기름투성이다.
더러운 신부는 가당치 않다고
으름장을 놓는 자들에게 나는
큰소리를 칠 근거를 가지고 있다.
신부의 예복은 내가 아니라 신랑이 마련하는 것이고,
신부의 도리는 램프를 밝힐 기름을
전심으로 마련하는 것뿐이라는.
오늘도 나는 기름을 마련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쓴다.
통제할 수도, 가둘 수도,
조종할 수도 없는 절대 타자이신 그분을
개인적이고도 인격적으로 알아가는 중이다.
내 뜻과는 전혀 다른 의중을 가지고 계셔서
살려 달라 하면 죽이시고,
죽이시든 지요 하면 살려내시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분.
알아갈수록 두려움과 동시에 그리움이 사무치는
역설의 신랑을 깨달아 가는 중이다.
더디 오시기로 유명하시기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느닷없이 들이닥치기 전,
그리고 혼인 잔칫집의 문이 닫히기 전에
기름은 계속해서 채워져야만 하는 것이다.
#Mar. 14. 2016.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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