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poeM

크리스마스 연가

창고지기들 2014. 12. 20. 17:27

 

 

 

크리스마스 연가

 


그대 말씀 때문에

밧모섬에 갇힌 저는

침묵을 배불리 마신 뒤

돌아서서 눈물 짓 곤 합니다.

그댈 안을 힘이

제겐 없는 까닭입니다.

 

 

세상이

침묵을 유기하고

말을 버려서

당신이 말씀으로 오셨답니다.

사 백년 동안이나

침묵의 잎사귀를 떼어내면서

간다, 안 간다,

간다, 안 간다, 간다, …

침묵을 한 잎 한 잎 떼어낼 때마다

눈물 마를 일이 없었다는데,

당신도 침묵 속에서

쩔쩔맸던 것일까요?

 

 

진리를 담아낼 수 없는

말만 무성한 세상,

그래서 슬픔이 흐드러진 세상에

그대는 기쁨으로 오셨답니다.

세상이 적선하듯

그대를 위해 허락한 공간은

말구유 한 조각뿐이었어도

그 곳에 누운 아기의 울음만으로도

온 세상에 기쁨의 강을 짓기에

충분했다지요?

 

 

진리이기에

우울할 틈이 없는 당신 말씀.

그런데도 매번 슬프고 우울해지는 것은

제 말이 여전히 세상을 닮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대는 매일 아침

응앙응앙 우는 기쁨으로 오시는데

그대를 받을 힘이 없는 저는

창연할 뿐입니다.

 

 

오늘도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밧모섬의 벽마다

낯선 침묵이 어리고

불편한 침묵이 쌓입니다.

깔깔한 침묵을 넘기며

저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립니다.

마침내 당신을 품을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Dec. 20. 2014. 사진 & 시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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