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정주서약 Part 2

창고지기들 2014. 6. 28. 12:00

 

 

 

 

 

 

 

다시 돌아가기 위해

잠시 나이로비를 떠났다.

떠나 온 고국에서

좋아하는 삼겹살을 먹을 때면,

가끔 마음의 한 꼭지 점이

유난히 무거워질 때가 있다.

기우뚱 무게 중심을 잃은 마음이

빗금을 따라 미끄러지면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에 비하면

계란프라이를 먹는 일은

언제나 가볍다.

 

 

 

누군가는 말했다.

주께 드려야할 헌신은

닭이 드리는 계란이 아니라

돼지가 드리는 베이컨이어야 한다고.

죽어야만 드릴 수 있는 베이컨은

죽지 않고도 드릴 수 있는 계란에 비하면

얼마나 무겁고 고통스러운지!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삼겹살을 먹는 일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는 것이.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삼겹살을 먹는다.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 아니하리라”

(말라기 1:10)

 

 

 

 

베이컨을 원하시는 그 분께

그들은 계란을 드리면서 생색을 냈다.

흠 있는 소유의 일부를 드리면서

그들 자체를 원하시는 그 분께

그 정도 선에서 만족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성전의 주인이

성전 문을 닫고 싶다고 토로하신다.

이스라엘의 행동에

심한 모욕감을 느끼셨기 때문일 것이다.

 

 

 

 

 

"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말라기 1:14)

 

 

 

 

제단 위에 드릴 제물로

그 분은 흠 없는 수컷을 요구하신다.

즉, 그 분은

흠 있는 사역, 성취, 업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로 흠 없게 된

우리의 몸과 영혼 자체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내가 드리고 싶었던 제물은

그 옛날 이스라엘 마냥

삼겹살이 아니라 계란이었다.

나의 사역, 성취, 업적,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제물로

그 분께 바치고 싶었지,

내 몸과 영혼 자체를

불살라 드리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케냐 나이로비는

한라산 꼭대기만큼의 높이에 있다.

높고 평평한 나이로비의 지리는

그 분께 쌓아올린 제단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나이로비에서 살아가는 나는

높은 제단에 바쳐진 산 제물이다.

이방 땅 나이로비에서

더 이상 계란을 낳을 수 없었기에

나는 별 수 없이 나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를 드리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들었고,

가늠했던 것보다 괴로웠고,

상상했던 것보다 고통스러웠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위해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처럼

나이로비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잠시 고국에 와있다.

캄캄하기만 했던

제단 위에서의 제물로서의 삶이

이 곳에서 보니

조금씩 가치 있는 일로 보인다.

 

 

 

하!

이제는

매일 정결수로 세례를 받으며

제단에서 죽고 부활하기를 반복하는

정주서약에 익숙해질 때다.

 

 

 

키리에 엘레이손!

 

 

 

 

#Jun. 28. 2014.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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