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보물창고/선교 편지

삶의 아픔과 상실에 처한 케냐를 위해 기도하면서

창고지기들 2013. 9. 22. 23:06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삶의 모든 자리에

변함없이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가 지닌 신앙은

더 높은 단계로 성장해가기보다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져가고

쉽게 방향성을 상실해가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오직 새롭게 하는 능력이 제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밖에서 주어진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합니다.

동시에 삶의 순간마다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저 자신을 위한 그리스도’(Christ for me)뿐 아니라,

저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Christ with me)

더욱 의지하고 갈망하게 됩니다.

 

제 삶의 자리에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를 경험하면서

저는 잊어버린 신앙의 언어인

탄식(lament)의 의미와 위치를 다시 발견합니다.

 

 

오늘 저희가 거주하는 나이로비에는

예기치 못한 테러가 쇼핑몰에서 발생했습니다.

테러 자체가 충격적이기보다는

그러한 공격이 무방비상태에서 삶의 필요를 위해 모여있는

무고한 사람들게 예측하지 못한 시간에 발생한 것입니다.

저희 가족들 역시 이곳 주변을 이따금 오가고

또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기 위해서

방문해야 할 장소이기도 합니다.

 

다행이 저희 가족들뿐 아니라,

가까이 아는 한인분들이나 케냐 분들의 피해 소식을

아직 직접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도할 수 없는 것은

이미 목숨을 잃었거나

부상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충격적인 현실을 직접 접하면서

저는 제가 믿고 순종하는 하나님 앞에서

잠시 고백할 언어를 상실했습니다.

제가 배우고 익힌 신학은 단지 하나님을 변증

(그래도 하나님은 선하시고, 능력있으신 분이시라는 논증)하는 것을

너무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충격과 공포로

어쩌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향해서

제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안타까움과 두려움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많은 경우 성공과 외적인 업적을 이룰

경우에 대한 언어적 표현(간증과 찬양)은 풍성합니다.

그래서 힘들고 뜻하지 않은 어려운 일이 주어질 때

아주 쉽게 자책하거나 죄의 결과라는 두려움외에는

다른 신앙의 표현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현실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이곳 나이로비에서

갑작스러운 테러 수준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고 부상당한 이들과

이 사건을 직접 접하고, 보고, 들은 이들과 함께

시편의 저자와 함께 하나님에게

잠시 거룩한 신앙의 확신이 아니라,

슬픔과 아픔 자체를 고백하고자 합니다.

 

 

 

"어느 때까지니이까

[케냐]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케냐]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케냐]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케냐]의 원수가 [케냐]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여호와 [케냐]의 하나님이여

[케냐]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케냐]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케냐]가 사망의 잠을 잘까합니다

(시편13:1-3)

 

 

 

탄식하는 케냐의 백성들을 함께 맏음에 품고 기도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믿음의 동역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며 거주하는 삶의 과정에서

더욱 분명히 하나님의 마음과 일하심을 알고 참여할 수 있도록

속적으로 같이 기도해주시길 소망합니다.

 

 

이 일에 직접 참여하는

저와 제 아내(이상예)

그리고 하영이와 하진이의

강건함과 안전함 그리고 능력있는 삶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시길 겸손히 부탁드립니다.

 

 

 

2013 9 21

나이로비에서 주종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