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흘러간 아이스크림 알레고리

창고지기들 2013. 9. 21. 19:41

 

 

 

 

 

왼손 칼잡이 에훗,

소모는 막대기를 들은 삼갈,

여자 드보라,

포도주 틀에서 밀 타작하던 기드온...

 

새벽마다

위대한(?!) 사사들을 한명씩 만나다 보니,

‘아이스크림 알레고리’라는 이름표를 단

5년 전에 썼던 글이 살며시 다가와

내 등을 톡톡 두드렸다.

다음은 ‘아이스크림 알레고리’의 일부분이다.

 

 

며칠 전,

남편이 냉동실 문을 열고는

그 곳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애타게 갈망하고 있던

하겐다즈 엑스트라 리취

라이트 커피 아이스크림통을 꺼냈다.

(고 녀석 이름 한 번 거창하네.ㅋ)

 

몇 주 동안 자신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것이 심통이 났는지

녀석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연신 녀석을 달래가면서

애를 써서 숟가락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모든 모습을 처연히(나는 당뇨인!ㅋ)

바라보고 있을 때,

그 분의 신이 내게 임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남편 앞에 앉아서

즉흥 설교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ㅋㅋㅋ~~~

 

설교의 제목은 ’변방의 사람들’! ㅎ~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꺼내어 드실 때

어느 쪽부터 숟가락으로

긁어 드십니까?

 

어린 아이들은

먼저 가운데 부분을 공략하여

열심히 숟가락으로 긁어 댑니다.

그러나 가운데 부분은

결코 만만치 않기에

아이들의 입 속에 들어가는

아이스크림의 양은 민망할 정도입니다.

 

반면, 어른들은

가운데를 공략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언제나

가장자리를 먼저 공략하여

충분한 양의 아이스크림을

입속에 털어 넣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어른들은

아이스크림의 가장자리부터

공략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경험적인 지혜로

아이스크림의 가장자리가

가운데 보다 훨씬 빨리

녹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자리가 가운데 보다 훨씬 더 빨리 녹아

부드러워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교훈을 던져줍니다.

 

성경에도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마지너리,

즉 변방의 사람들을

들어 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약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들어

크게 쓰심으로써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마지너리,

즉 기득권 세력에서 밀려난

변방의 사람들은

아이스크림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상하고

깨어진 심령을 가진 자들로서

하나님의 숟가락,

즉, 하나님의 손길이

가닿으면 금방 녹아져서

하나님이 숟가락으로

뜨시기에 충분할 만큼

부드러워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주로 변방의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의

가운데 부분에 해당하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어찌나 마음이 강퍅한 지

하나님의 숟가락이

좀처럼 들어가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아닌

변방의 사람들,

마지너리에 있는 사람들을 쓰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중심에서

밀려나 변방에 처박혀 있다고,

또 마음이 상하고 깨어져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고

절망하거나 낙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숟가락은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마지너리로 밀려나면 날수록

곧 하나님의 숟가락,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임박했다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의 일장 설교를 듣고 있던

남편이 박장대소를 했다.

나 역시 나의 알레고리(풍유, 은유) 설교에

낄낄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아이스크림과

하나님의 역사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ㅋㅋ)

 

 

글을 찬찬히 읽어 보니

5년 전 나는 반전 있는 한 방을

욕망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마지너리의 사람들을 통해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목적은

당신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내가 원했던 것은

마지너리에 있었던 내게

하나님께서 위대한 한 방을 행하시길

은근히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사들을 한 사람씩 만나면서

내가 갖게 된 관심은

마지너리에 있던 그들이 행한

위대한 한 방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일(doing)은

오히려 작은 일처럼 느껴진다.

하나님께서 굳이(!) 그들을 선택하여

그들로 사사가 되게(being) 하신

일에 비하면 말이다.

 

사사기 기자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답게

최소한만 보여주고 있다.

즉, 그는 이스라엘의 배신과

갑자기(?) 등장한 사사를 통한 구원만을

집요하게 반복하여 열거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사사기 기자가

드러내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긍휼이다.

 

이스라엘의 배신이 거듭될수록

하나님의 긍휼은 기하급수로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 가중된 긍휼은

언제나 한(!) 사람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수혈된다.

 

그 한사람을 세우기까지

그 사람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설득을

하나, 둘 분주히 셈을 하다가

나는 아득해져서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만다.

갑자기 겟세마네의 기도소리가

웅웅거리며 귓가를 맴돈다.

 

그래서 나는

‘교회 박사’로 추앙되었던

14세기 신비주의자

시에나의 캐서린(Catherine of Siena)의

기도를 따라 그 분께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오 미치신 하나님이여!

당신은 사랑에 미치셨고,

사랑에 취하셨습니다.”

 

 

 

#Sep. 21. 2013. 사진 &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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