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무리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후서 3:1-2)
글 한 줄이 없던 인생이었다.
변두리 갈릴리 호수에 그물을 내리며
생계를 꾸리는 자의 삶이란 대강 그런 것이었다.
그러던 어부가 어느 날 작가가 되었다.
그것도 이천년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의 작가가 되었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만난 덕분이었다.
말씀을 제대로 만나서 그것에 사로잡힌 사람은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종류가 되는 것이다.
갈릴리 어부 출신 베드로가
작가가 된 이유는 명백하다.
독자인 성도들에게
말씀(선지자들의 예언과 주님의 명령)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보존하는 것인 동시에
보존된 것을 끄집어내는 행위이다.
기억의 소환은
난폭한 현실이 싸움을 걸어올 때 종종 실행된다.
보존된 기억의 블록들로 만들어진 정체성이
어려울 때마다 요긴한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기억은 우리로
기어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결국 그런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렇게 우리는 정체성을 꾸준히 쌓거나 부수면서
자신의 정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후서 1:12)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최상의 방법은 이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과 언제나 함께 하는 것.
무엇이든 잊지 않을 수 없는 이가 나인 까닭이다.
그것이 내가 매일 아침,
밥을 먹듯 말씀을 펴고 묵상하는 이유들 중 하나이자,
자녀들에게 말씀 묵상을 가르치고 훈련시킨 연유다.
“너희도 알다시피, 엄마 아빠는 가진 것이 별로 없어.
그래서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은 딱 하나야.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면, 말씀을 묵상하는 이들이 우리다.
그것이 우리의 제 일 되는 정체성이다.
하진군은 엎드린 채, 하영양은 양반다리로,
남편과 나는 책상에 앉아서 동일한 본문을 가지고
묵상을 하면서 공책에 손 글씨를 써내려간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서 단 한 권뿐인 책,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한 증거를
매일 근면히 쓰면서 남긴다.
“나 큐티 노트 다 썼어!”
2020년 마지막 날에
하진군은 또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새로운 노트를 사는 일로 축하는 즐겁게 시작된다.
이 와중에 재밌는 사실은 학과목들 중에서
잉글리쉬(국어)를 가장 어려워하는 하진군이
이미 작가라는 점이다.
그렇게 변방에서 고기나 잡는 우리들은
말씀을 만나는 바람에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이들이 되었다. 흐음.
베드로처럼, 그리고 요한처럼
쓰는 일로 기쁨이 충만한 한 해이기를!
키리에 엘레이손!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요한일서 1:3-4)
#Jan. 2. 2021.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