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12. 7. 16. 17:52

 

 

 

 


요단강가에서

세례 요한이 베풀었던 세례는

심판의 그림자였다!

 

 

즉, 그는 심판이라는 다가올 실재(實在)를 위해

이 땅에서 회개의 물세례(침례)를 베풀었고,

세례를 받은 자들을 향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권면했던 것이다.(눅3:7-8)

 

 

또한 그는 그리스도 역시 세례를 베푸시는 분,

즉, 다가올 심판을 위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으로

사람들에게 소개했다.(눅3:16-17)

 

 

그렇게 요한은 세례의 신학을

온 마음과 온 몸으로 실천했던

세례 목회자였던 것이다.

 

 

그런 세례 요한에게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셨다.

이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즉, 자기비하(自己卑下)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심판의 주재께서

자신을 낮춰 요한의 세례를 통해

오히려 다가 올 심판의 대상이 되셨기 때문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눅3:22b)

 

 

심판의 주재에서 심판의 대상으로

자기비하를 하신 후,

성자 그리스도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으셨다.

이는 성자 하나님의 세례 받음이

온 인류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구원의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는 예수님의 세례 사건 이후에

특별한 족보를 소개하고 있다.

이 족보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에게서 마치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심판의 대상이 되심으로써

비로소 온 인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I'm nothing!"

 

 

이는 9년여 간의 미국에서의 모든 생활과

사역을 정리하면서 지체들 앞에서 고백했던 말이다.

허나, 요즈음 좀처럼 꺼지지 않는

내 안의 잔혹한 불을 보면서

나는 그 고백이 그저 말뿐이었음을

아프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무엇인가가 되길 원했고,

무엇인가로 인정받고, 대접받고, 사랑받길 원했다.

그러나 이 곳 케냐의 그 누구도,

그리고 그 무엇도 나의 갈망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러자 한 불이 내 안에서 일어났고,

그 불은 점점 커져서

나를 희롱하면서 몹시도 괴롭히게 되었다.

 

 

그 불의 정체는 분노였다.

나는 마치 심판의 주재라도 되는 양

내(!) 눈에 옳지 않게 보이는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갈망을 채워주지 못하는!)

케냐의 모든 사람, 모든 것들을 심판하려고

분노의 불을 크게 지폈던 것이다.

 

 

 

 

그 날 아침,

나는 요단강가에 앉아서

꺼질 줄 모르는 거대한 분노 때문에

추워서 덜덜덜 떨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요한과 함께

차가운 요단 강물 속으로 들어가시는

그 분의 뒷모습을 뵈었다.

 

 

강물이 발목쯤에 찼을 때,

문득 그 분은 멈춰 서서

뒤돌아 나를 응시하셨다.

 

 

 

“나를 따라 오너라.”

 

 

 

“지금 저는 너무 추워서 떨고 있어요.

주님이 서 계시는 그 강물은

아마도 저를 더 춥게 할 거예요.”

 

 

 

나는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 말했다.

 

 

 

“나를 따라 오너라.”

 

 

 

그 분은 따뜻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따뜻한 그 분의 말씀에

머뭇거리면서 그 분께로 나아갔다.

 

 

처음 요단 강물에 발을 담갔을 때,

그것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차가웠다.

그래서 나는 잔뜩 움츠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그 분은 내게로 다가와 내 손을 잡으셨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울상을 지으면서

그 분의 손을 잡고 요단 강물 속으로

한 발, 한 발 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더 깊은 곳으로 들어 갈수록

물은 조금씩 더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몸이 완전히 잠기는 곳에 이르자,

그 분은 나를 완전히 물속으로 밀어 넣으셨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심판의 주재가 되려하지 말고,

오히려 심판의 대상이 되려하여라.

내가 너를 이들에게 보냄은

이들을 심판을 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과 함께 심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잠시 후 물 밖으로 나왔을 때,

내 안의 분노의 불길은 진정이 되었다.

젖은 옷을 벗고 물기를 닦은 후,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 분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일 새벽 요단강가로 나아와

침례를 받아야 하는구나.

그렇게 다가올 심판을 기억하면서

겸손히 그 분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로구나.’

 

 

 

 

키리에 엘레이손!

 

 

 

 

#Jul. 16. 2012. 사진 & 글 by 이.상.예.

*)사진은 지난 5월 우기로 인해서 급조된 동네 호수임.

지금은 말라 다시 예전의 구릉으로 변해버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