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eeking Understanding vs. Treasuring It In Heart
Life Seeking Understanding vs. Treasuring It In Heart
이해를 추구하는 삶에서 마음에 담아두는 삶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가까이하는 삶을 시작한지
20년이 조금 넘어섰습니다.
대학생활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르는 지난 20여년간
(군대에서의 3년과 유학생활 준비를 위한
2년여 기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학교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20대와 30대를 학교를 중심으로 배우고 생활하면서,
저의 모든 신앙은 이해와 연결된 것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aith Seeking Understanding)
이해를 추구하는 삶(Life Seeking Understanding)이었습니다.
정확한 이해와 논리에 근거해서 신앙과 삶을 추구하는 것은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에서 더욱 엄격하게 훈련되었습니다.
그래서 이해를 추구하는 제 삶은 제 전공인 예배와 관련해서도
선명하게 제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곧, 이해를 추구하는 예배(Worship Seeking Understanding)가
제 신앙과 삶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해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가 제 삶 깊은 곳에서부터
저를 지배하고 이끌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해되지 않으면, 쉽게 설득되지도 않고,
어떠한 삶의 결정도 쉽게 하지 않는 태도를 드러내곤 했습니다.
이러한 제 삶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확신과 가치가
이곳 선교지에서 새로운 위기(?)를 맞이하면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정확한 논리와 원리에 근거해서
이해하려는 태도로 바라보고 접한
하나님의 땅, 케냐와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향해서,
저는 끝없이 이해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이해'(understanding)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해를 통해서, 제 신앙, 삶
그리고 사역에 더욱 깊은 확신을 갖고
이들을 섬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들을 이해할 때, 이들을 향한 태도와 사역이
더욱 견고해지리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먼저, 이해하는 것 곧 인류학적 접근 방법은
끝없이 저로 하여금 한계에 직면하게 합니다.
삶의 기준과 가치가 서로 다른데,
그것을 이해하려는 것은 언어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에서는 매우 어렵고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만 실제적으로 가능한 것은
확인하는 것(affirming)뿐 입니다.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과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서 자신의 삶의 태도를 전환하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저는 저와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철저히 이해해서,
그것을 품고, 제 마음에 확신을 갖은 후,
그들에게 다가가 섬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확신하게 된 것은
다름을 확인하는 것(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닌
그대로 인정하는 것)외에
이해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삶의 가치와 세계관이 저와 상당히 다른
이곳 사람들과의 관계와 어울림을 위해서,
이해를 추구해왔던 제 삶의 태도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정확한 모습을
그 자체로 마음에 새기는 것(treasuring it in heart)입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것(treasuring it in heart)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한 목자들의 고백에
마리아는 그것들을 모두 마음에 새겼습니다.
(treasured in her heart; 눅2:19)
또한 성전에서 놀라운 고백을 한 예수님에 대해서,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것을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
(treasured in her heart;눅2:50)
마리아에게 주어진 인생의 현실은
그녀에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것을 이해하려하기보다는
그 모든 것들을 마음 담아두었습니다.
그러한 마리아를 통해서,
하나님은 스스로 아들이 되어,
그녀 안에 자리를 잡고,
그녀의 몸을 통해서,
세상에 나와 모든 이들에게 복음이 되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러나 실제인 역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곳 선교지에서,
저는 모든 것들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이해를 통해서만 무엇인가 해야한다는 고정관념과,
이해를 추구해야만 섬김과 사역이 가능하다는
인류학적 기준에 매여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삶의 태도를 전환하려 합니다.
이해하려하기보다는 정확히 제가 보고 접하는 것들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담아두는 일을 통해서,
제가 아닌, 제 안에 하나님이 자리를 잡고,
저로서는 전혀 이해불가능한 그런 일,
곧 그리스도의 탄생과 같이,
하나님이 복음을 위해서
새롭게 탄생시키길 일을 경험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선교는 이해를 통해서 하는 선교사의 사역이 아니라,
인간이 마음에 담아두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너무 많은 시간동안
실제로 가능하지 않을 '이해'에
제 삶의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기보다는,
그 풍성한 삶의 모습들을 마음에 깊이 담아두는
하나님의 그릇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마치 마리아가 이해하지 못하지만,
엄청난 하나님의 일하심의 도구가 되었듯이,
저도 다만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그릇이 되길 소망합니다.
Lord, have mercy on me!
2012년 7월 11일
나이로비에서 주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