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불행을 제압하는 다행

창고지기들 2025. 6. 14. 12:09

 

 

 

 

불행을 제압하는 다행

 

 

다행히도 나는 병적인 당위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거의 반세기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혹은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 속에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나 무심한 세상이 당위적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위를 고집한다면, 큰 혼란을 각오해야 한다. 결국, 반복되던 나의 현실적 멀미는 교정 받지 못한 우매 무지함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시편 73:12-13)

 

시편 73편의 시인 역시 당위로 점철된 생을 산 듯 보인다. 의인은 형통해야만 하고, 악인은 패망해야만 한다는 당위적 인생관이 시인으로 하여금 꾸준히 의를 선택하게 만든 것 같다. 하지만 시인의 현실은 그의 무거운 당위를 가볍게 무시하고 비웃었다. 그의 일상에서 악인의 형통은 밥 먹듯 일어나는 것이었다. 

 

악인의 형통이 하나, 둘 더해지다 못해 열, 백 곱해지면서 시인의 마음은 종일 재난을 당하고 아침마다 징벌을 받는다. 악인의 형통이 공공연한 것이라면, 차라리 악인들 편으로 전향하는 것이 맞는 것은 아닐까? 시인은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다가 그는 자기 당위의 근거이신 하나님께 이 난제를 가지고 나아간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편 73: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 시인은 불현듯 깨닫는다. 현실에서 자주 발생하는 악인의 형통이 그들의 종말은 아님을. 그것은 성소에서 경험한 초시간적 경험을 통해 주어진 은혜였다. 시인은 비록 특정할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에, 지정된 멸망이 악인을 덮치는 모습을 목격하고 만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의 우매 무지함을 깨달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붙들어 깨달음으로 인도해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창세기 39:2a)

 

값비싼 부동산, 고액의 연봉, 권세 있는 자리, 영향력 있는 명예, 각광받는 동안 외모…. 대체로 형통함이란 이런 것들을 소유하는 것을 말한다. 처음에 시인이 생각했던 악인의 형통이란 것도 이런 것들을 악인 소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형통을 다르게 정의한다. 형통이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시편 73:22-23)

 

물론, 시인의 형통 개념은 교정을 받는다. 그는 자신이 주 앞에서 짐승처럼 우매 무지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주의 오른손이 항상 붙들고 있는 자신은 참으로 형통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시인의 노래는 또한 내 것이기도 하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

 

세상이 말하는 형통, 곧 부와 권세와 명예를 원한다면, 주님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애초에 주님은 그것을 보장해준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따르기로 했다면, 그 길에서 주어질 수도, 아니 주어질 수도 있는 부수적인 것들에 한눈을 팔면 안 된다. 한눈을 팔았다가는 길을 잃게 될 것이다. 불행히도 나는 지극히 나약하다. 한눈을 팔지 않을 수도 없고, 종종 한눈을 파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행을 압도하는 다행이 내게 있다. 그것은 형통이 내 것이라는 사실이다. 온갖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와 항상 함께 하신다. 신실한 언약 때문이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편 73:28)

 

당위의 상태에서 갖지 못해 안타까웠던 것들을, 가질 수 없어 애타했던 것들을 먼지처럼 훌훌 털어버린다. 그리고 현재 수중에 있는 것들을 감사로 씻긴 후, 낯설게 바라본다.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온통 형통으로 둘러싸인 나는 피난처에서 살아간다. 피난처에서 할 일은 형통하게 하시는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는 것이다. 키리에 엘레이손!

 

 

 

 

 

#Jun. 14. 2025.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