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의 단편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고.
미국, 백인, 중산층, 편견, 정체성 혼란, 무능력, 깨어진 가족, 환상과 환멸, 그리고 차분하다 못해 건조한 어조까지.
플래너리 오코너 상을 받을 만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미스 오코너의 소설은 재밌는 동시에 불편했던 반면, 미스터 포터의 것은 편안하면서 재밌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스터 포터의 소설 속 배경인 미국의 정경들과 문화적 소재들이 친숙하게 다가왔다. 글렌 굴드, 아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 쳇 베이커를 언급하는 대목이 나왔을 때는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포터 씨도 그런 것들을 보고 즐기셨군요, 나처럼. 역시 세계는 하나고, 우리는 동년배로서 취향이 비슷하네요. 그런데 <전함 포템킨>의 그 유명한 유모차 장면 기억나나요? 그 배경인 계단을 저는 오데사까지 가서 직접 봤답니다. 자랑하는 거 맞고요.’ㅋㅋㅋ
죄의식은 우리가 우리의 연인들에게 이런 비밀들을, 이런 진실들을 말하는 이유다. 이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든 일만의 죄의식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는 추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죄의식은 자초하여 입은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 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 뿐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내게 그러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요사이엔 문득 로버트를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나는 간신히, 그에 대한 기억을 나의 가장 고통스럽고 내밀한 상실들이 저장되어 있는 마음 한편에 놓아둘 수 있게 되었다. -본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중에서
위로는 공감과 함께 주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겐 위로의 책으로 기억될 듯싶다. 공감하지 못할 캐릭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리석고, 무능력하고, 연약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어여쁘고 소중한 존재들. 그들로부터 위로를 얻은 나는 특별히 마이클, 그 상처 입은 위로자가 넘겨보던 바로 그 책을 읽어보기로 한다.ㅎ~
#May. 24. 2025.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