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나귀 입을 여시니

창고지기들 2025. 5. 17. 11:30

 

 

 

 

 

나귀 입을 여시니

 

 

이스라엘의 육십만 대군이 모압 평지에 진을 쳤다. 온갖 수를 다 써도 이스라엘을 무찌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자, 모압 왕 발락은 패닉에 빠졌다. 살아남기에 필사적인 사람이 손대지 못할 것은 없다. 이스라엘의 신을 유혹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접촉 가능한 여호와의 관계자를 발 빠르게 물색했고, 발람이 선정되었다.

  

발락은 발람의 신맥(神脈)을 이용하기 위해 복채를 들려 장로단을 보냈다. 하지만 발람은 눈물을 머금도 그들을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여호와께서 거절 의사를 분명히 전해오신 까닭이었다. 이스라엘을 물릴 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철썩 같이 믿었기 때문에, 발락은 더욱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이번에는 귀족들로 구성된 사절단을 보내되, 돈 뿐만 아니라 권세까지도 들려 보냈다. 그들 손에 들린 것을 보고 눈이 뒤집힌 발람은 여호와의 뜻을 대충 제멋대로 해석한 뒤, 아침부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귀족들을 따라나섰다.

 

포도원 사이의 좁은 길에 들어섰을 때였다. 갑자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길을 막아섰다. 그를 피하기 위해 나귀는 갖은 방법으로 몸부림을 쳤다. 그 때마다 여호와의 사자를 볼 수 없었던 발람은 지팡이로 나귀를 사정없이 때렸다.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나귀에게 화를 냈던 것이다. 그러나 그를 진짜로 화나게 만든 것은 나귀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을 저주한 뒤에 모압 왕이 제공하는 돈과 권세를 누리고 싶은 자신의 기대를 들어주지 않는 여호와였다. 이를 알았던 까닭에 여호와는 나귀의 입을 열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민수기 22:28)

 

 

안타깝게도 발람은 나의 자아 레퍼토리들 중 하나다. 여호와와 교제를 하면서도 여전히 모압의 돈과 명예와 권세에 열광하는 자아가 내게는 있다. 올해 들어 나는 세 번의 거절을 당했다. 스쳐 지나가는 기회의 뒤통수를 세 번이나 바라봐야 하는 통에 화가 났다. 모압이 제공하겠다는 직업과 월급과 효능감을 누리고 싶은 기대가 좌절된 까닭이었다. 그 후로 안정감을 다시 회복하긴 했으나, 불쑥 찾아오는 거절감 때문에 몇 번씩 이불 킥을 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일찍 일어나 평소처럼 일상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모압의 고관들을 따라가기 위해 탔던 나귀, 그러니까 내가 세 번이나 때렸던 그 나귀가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민수기 22:28)

 

 

거절감이 만든 상처가 한바탕 드잡이를 시도하려할 때에 발람의 눈이 밝아졌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이 비로소 보였다. 머리를 숙이고 엎드린 나의 발람에게 그가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민수기 22:32-33)

 

 

비로소 나의 발람은 순복을 선언했다. 일이 세 번이나 연거푸 엎어진 것을 그 분의 확고한 뜻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러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발람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행하신 세 번의 거절은 너를 향한 사랑의 증거란다. 그러니 그것으로 자신을 혐오하거나 타인을 비난하는 빌미로 삼지 말거라. 오히려 너를 너답게 하려는 그분의 뜻을 신뢰하면서 너를 지지하고 돌보는 동시에 네게 맡기신 소명을 기쁨으로 감당하거라.”

 

 

 

#May. 17. 2025.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