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poeM

포도원 농부의 당부

창고지기들 2025. 4. 19. 10:38

 

 

 

 

 

포도원 농부의 당부

 

 

 

귀하가 리모델링한 포도원,

산울타리를 다시 두르고 

즙 짜는 틀과 망대를 새로 만든

저는 귀하가 새로 지은 포도원의 농부입니다.

 

 

오래 전 그 포도원은

배은망덕이 장기인 자들의 손아귀에 있었다지요.

포도원 소출 중 얼마를 받으려고

귀하가 보낸 종들을 잡아

심히 때려 상처 입히고 능욕하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 귀하가 보낸 상속자까지

잡아 죽인 뒤 포도원을 가로채려 했다는.

지금이야 한바탕 쫓겨난 그들이고,

유린당한 포도원에는 

새로운 단장과 함께 

신입 소작농이 배치되어

이제나 저제나 포도원 소출 중

얼마라도 맛보기를 기다리는

귀하가 있지요.

 

 

하지만 이를 어째요?

새 포도원이 맺은 것은

기대할만 한 극상품 포도가 아니라

고작 들 포도뿐이니.

이게 다 귀하의 포도원을 강탈하려는 

옛 농부들이 죽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서

새 농부들과 지겹게 반목하는 탓입니다.

 

 

그럼에도

끊길 리 없는 소망의 귀하입니다.

들 포도뿐일지라도

그것을 기꺼이 바치는 이가

겸손한 새 농부니까요.

부끄럽고 면목이 없을지라도

맺힌 것 그대로 바치는 성실한 정직함으로

극악한 옛 농부들은 

쇠약해지다 못해 진멸될 것이고

포도원은 마침내 극상품 포도로

주인을 기쁘게 만들 터이니.

 

 

그 때까지 

견뎌주시겠습니까?

인내와 긍휼의 왕,

저를 고용해주신 포도원 주인이시여.

 

 

 

 

#Apr. 19. 2025. 사진 & 시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