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25. 3. 15. 11:09

 

 

 

 

레슬리 제이미슨의 책, <공감 연습>을 읽고.

 

 

덤블도어가 말했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능력이 아니라 선택을 통해 나타나는 거라고. 그런 점에서 이 책 <공감 연습>은 작가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선.택.한 글감에는 고통이 담기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 같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불안한 긴장감을 일으키는 책의 소재들은 다음과 같다.

 

‘환자를 연기하는 의료 배우, 낙태와 심장 수술, 모겔론스 병 환자들, 국경선의 폭력적인 정경, 강도상해를 당한 관광객, 고통 투어, 극한의 ‘바클리 마라톤’, 재소자와의 인터뷰, 세 명의 소년을 살해했다고 지목되어 투옥된 세 명의 소년들, 여성 고통 일반에 대한 편견과 폄하.’

 

그렇다고 작가의 글쓰기 능력이 그럭저럭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녀는 굉장한 글쓰기 능력을 가지고 선택한 글감들을 독특하게 제조해낸다. 이와 같은 능력과 선택을 미루어 볼 때, 작가는 고통과 매우 친숙한 존재로서 그 무엇보다 공감을 갈망하는 여.성.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감은 투과이자 일종의 여행이다. 그것은 당신에게 다른 사람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라고 제안한다. 입국심사와 세관을 거쳐 다른 나라로 가고, 질의응답을 통해 국경을 넘는 것과 같다. 당신이 사는 곳에는 무엇이 자랍니까? 법은 어떤가요? 거기서는 어떤 동물을 키우나요?

나는 그의 공감이 필요했다. 단순히 내가 설명하고 있는 감정을 이해해줄 뿐 아니라 실제로 어떤 감정들이 존재하는지 내가 알아내게끔 도와줄 그의 공감이.

충분히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어차피 그 감정은 앞으로도 몇 년 동안 계속해서 다른 형태로 찾아올 테니까. 남들도 하는 일이라는 평범성이 아픔에 대한 예방접종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대기실에 있는 모든 여자가 내가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한다고 해서 그 일이 더 쉬워지는 건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 어떻게 요구해야 할지 모르는 무언가를 세상에서 구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데이브든, 의사든, 누구든 내 감정을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나에게 전해줄 사람들을. 그것이 구할 수 있거나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공감이다. 보이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다시 설명해주는 공감. -본서, <공감 연습> 중에서

 

 

 

독서하는 내내, 안남미를 씹는 느낌이 들었다. 기다란 모양에 찰기가 없어서 후루룩 날리는 쌀이 안남미다. 창의성 함량이 높은 작품이어서 그런지, 문장과 문단 사이의 간격이 썩 불규칙적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생각 없이는 씹어 삼킬 수 없었다. 찰기가 담뿍 담긴 논리적 긴밀성을 가진 글들을 선호하는 편이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매우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글인 동시에 완성도가 높았던 관계로, 개인적으로 작가 레슬리 제이미슨을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비록 나보다 연배는 훨씬 어려도.ㅋㅋㅋ 

 

 

 

그녀는 아파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영원히 아프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그 아픔이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정체성이라는 말은 아니다. 고통을 목격하면서도 그 고통을 둘러싼 더 큰 자아까지 목격할 수 있는 여성 의식을 재현할 방법은 있다. 그런 자아는 흉터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그 흉터보다 더 크게 성장하며, 상처에 안주하지도 상처를 지겨워하지도 않으면서 실제로 치유하고 있다. 

물론 다른 뉴스보다 중대한 뉴스들도 있다. 한 소녀가 같이 밤을 보낸 뒤 전화를 하지 않는 남자에게 뒤섞인 감정을 가지는 것보다 전쟁이 더 중요한 뉴스다. 그러나 나는 공감의 유한 경제를 믿지 않는다. 나는 관심을 쏟는 것이 세금만큼 많은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고통을 페티시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것의 재현을 멈춰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연기된 고통 역시 고통이다. 사소해진 고통 역시 고통이다. 나는 클리셰와 연기라는 혐의가 우리의 닫힌 마음에 너무 많은 알리바이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며, 우리 마음이 열리기를 바란다. 나는 그 바람을 썼을 뿐이다. 나는 우리 마음이 열리기를 바란다. 진심이다. -본서 중에서

 

 

지금까지 숱한 묵상 모임을 인도하면서 해온 일은 다름 아닌 공감이었다. 무슨 말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심리적으로 안전한 환경을 공들여 조성하여, 각자의 상처에 귀를 기울이고, 나아가 그것을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스스로 상처를 말씀과 연결지어 언어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내가 해온 공감이다. 공감의 원형이신 그분의 말씀을 토대로 서로에게 말하고 들으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힘을 주고,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공감을 만끽해왔던 것이다! 할렐루야!

 

 

 

#Mar. 15. 2025.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