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 랍사게 음소거하기
스피커 랍사게 음소거하기
연일 지속되는 폭염 속 다세대 주택가. 인구 고밀도가 창출하는 기본적으로 높은 체감온도 위에 좁다란 길을 수정하려고 인부들이 만들어낸 굉음이 추가 되자, 이른 아침부터 더위는 이미 최고점을 찍는다. 때마침 켜지는 스피커 랍사게. “아, 아, 잠시 안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땀에 젖은 귓가에 울려 퍼지는 흉흉한 겁박.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그들의 산당들과 제단을 제거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하기를 예루살렘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그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열왕기하 18: 22, 29-31a)
앗수르 왕 소유의 스피커 랍사게. 그는 오로지 앗수르 왕의 욕망과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입을 벌린다. 대개는 아람어로, 그러나 필요하다면 유다어로 설득할 줄 아는 최신 다중어 기능의 스피커. 불행히도 그것은 나의 거주지 도처에 설치되어 재생 중이다.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나 스마트 폰만 켜면 입을 놀리는 스피커 랍사게의 근면함이라니!
그는 팩트 몇 알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뻥튀기해서 바삭하게 들려주는가 하면, 아예 대놓고 거짓말을 떠먹여주기도 하고, 더러는 협박을 귓구멍에 쑤셔 넣기도 한다.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잘도 속아 넘어가는 것은 외모지상주의 때문이리라. 깍듯하고 예의 바를뿐더러 세련되고 자신감 넘치는 스피커의 인텔리한 말본새와 표정과 몸가짐은 앗수르 왕을 위한 연출이다. 그러나 호모사피엔스의 저주, 그러니까 시각주의의 강력한 지배 아래 있는 나는 몸살을 앓을 줄 알면서도 별 수 없이 스피커 랍사게에게 귀를 내어주고 마는 것이다.
“예루살렘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네. 유튜브를 열면 크리소스톰과 같은 황금의 입을 가진 자들의 설교가 천지라니까. 모름지기 현대 교인이라면 온라인 담임 목사 한 명쯤은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히스기야처럼 백 날 기도하면서 기다려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지금까지 안됐으면, 앞으로도 가망이 없다고 보는 게 현명하지. 그러니 앗수르 왕이 모조리 함락시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여호와를 떠나 앗수르 왕에게 무릎 꿇게. 그래야 이제라도 승승장구할 수 있을 거네.”
오직 앗수르 왕을 위하여 어디서든 자동 재생에 되는 스피커 랍사게. CCTV처럼 도처에 설치된 랍사게를 폐지시킬 방법이 내겐 없다.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제멋대로 플레이되는 스피커의 음량을 최소화하는 것뿐.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예루살렘 이 제단에서만 예배하는 것과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손에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 것이라는 믿음을 선택했다네. 시각주의라는 호모사피엔스의 천형(天刑)이야 나도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보이는 것 때문에 흔들릴지언정 나의 선택은 기필코 여호와야. 그것이 지금까지 번번이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를 고집하는 까닭이자, 나의 변두리 취향의 원인이라네. 키리에 엘레이손!”
#Aug. 3. 2024.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