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본연의 자기 자신되기

창고지기들 2024. 6. 1. 12:28

 

 

 

 

 

본연의 자기 자신되기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킨더가르텐(kindergarten)을 다니고 있던 딸아이는 전형적인 걸리 걸(girlie girl)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톰보이(tomboy)로 전향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아이는 머리 색깔을 금발로, 눈동자 색깔을 파란색으로 바꿔달라고 조르곤 했다. 이루어질 리가 없는 요구였다.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이는 옷장을 가득 메운 공주 옷과 치마를 외면한 채,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야구 모자를 꾸욱 눌러쓰고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이유를 알지 못해 어리둥절했었다. 그러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추수 감사 시즌이 다가오자 학교에서는 킨더가르텐 아이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각각 필그림(pilgrim)과 인디언으로 분장을 시켰다. 부모님을 초대한 학교 행사에서 나는 인디언으로 분장한 딸아이를 열심히 사진에 담았다. 어쩐 일인지 별로 즐거워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는 인디언이 아니라 필그림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바꾸어줄 것을 요청했으나, 선생님은 딱 잘라 “NO!”라고 거절했다고 한다. 이유인 즉은, 너는 동양이니 백인인 필그림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금발 염색에, 파란 눈동자를 원했던 것이구나! 백인이 되고 싶어서.’

 

눈을 찢으며 놀리는 또래 친구들뿐만 아니라 선생님으로부터도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이 아팠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는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에베소서 2:11-12)

 

 

백인과 인디언 사이에 금발에 파란 눈동자가 있었다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할례와 율법이 있었다.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은 원수이자 담이었다. 할례와 율법의 담으로 둘러싸인 안쪽에는 그리스도가 있었고, 언약과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그리고 소망과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다. 할례와 율법의 담 밖에는 그리스도도, 언약도, 이스라엘도, 소망도, 하나님도 없었다. 만일 이방인들 중에 그러한 것들을 얻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유대인이 되어야만 했다. 할례와 율법의 담을 넘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만 했던 것이다.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2:17-18)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화평(14절)이 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할례와 율법의 담, 곧 유대인과 이방인을 쪼개버린 원수를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14-16절). 이것을 가리켜 사도 바울은 ‘평안의 복음’(에베소서 6:15)이라고 한다. 이 평안의 복음은 멀게는 이방인들에게, 또한 가깝게는 유대인들에게 모두 전해졌는데, 반드시 성령과 함께 전해졌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한복음 20:21-22)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 평안의 복음(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과 함께 성령을 선물하셨다. 평안의 복음과 성령을 받은 자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모두 한 새 사람이 되어(15절) 은혜의 보좌 앞, 곧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이방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더 이상 유대인이 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킨더가르텐을 다니던 딸아이는 어느새 성인이 되어, 국제학교에서 주님의 자녀들을 가르치고 있다. 더 이상 백인이 되고 싶어 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우리의 화평이신 주님으로 인하여 동양인인 자기 자신과 완전히 화해를 한 까닭이다. 이제 누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규정하든지 상관하지 않는 그녀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히브리서 4:16) 뿐이다. 그렇게 그녀는 백인이나 유대인이 아니라, 오롯이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중이다. 평안의 복음과 함께 주어진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회와 연합하면서. 

 

평안의 복음과 성령을 받은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되려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이 지어주신 본연의 자신이 되고자 할 뿐이다. 그와 같은 수없이 다양한 본연의 성도들이 하나의 교회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다니! 에베소서의 창을 통해서 바라본 우주적 교회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을 둔 교회가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편 8:1)

 

 

#Jun. 1. 2024.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