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24. 2. 10. 11:07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 <사랑의 역사>를 읽고.

 

 

내 부고가 쓰일 때. 내일. 혹은 그다음날. 거기에는 이렇게 적힐 것이다. 레오 거스키는 허섭스레기로 가득찬 아파트를 남기고 죽었다. -본서 첫 머리

 

장편소설 책장을 펼 때면, 의례 각오가 발생한다. 그것은 일종의 자동 반응으로, 경험의 축적이 이루어놓은 것이다. 진입 장벽이 없는 책은 없을 것이나, 장편소설의 경우에는 특히나 높은 진입 장벽을 특징으로 한다. 고로 <사랑의 역사>을 읽기에 앞서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 속 지명과 인물들의 이름과 그들 간의 관계를 애써 기억해야한다는 피곤함을 무릅써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장편의 진입 장벽이 고작 문지방 수준이라니! 첫 페이지에서 입장이 완료되어 버리자 산뜻한 놀라움이 코를 간지럽혔다. 산뜻한 향기가 서서히 휘발되면서 독서는 진행되었고, 이윽고 마지막 책장을 코앞에 남겨두었을 때였다. 갑자기 영문을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나 왜 울어?”를 되풀이하면서 울던 곳에는 바다향기가 맴돌았다. 뒤따라온 당황스런 놀라움이 봉투구조(수미상관)를 완성하면서 독서는 마무리되었다. 

 

 

심장이 부풀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난 이렇게 오래 살아왔어. 제발. 조금 더 산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잖아. 아이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었다. 내 사랑이 어떤 소소한 방식으로 그애 에게 이름을 주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잘못된 문장을 고르게 될 까봐 두려웠다. 아이가 말했다. 아버지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그 아들-나는 아이를 두 번 두드렸다. 그러고 나서 두 번 더 두드렸다.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 다른 쪽 손으로 두 번 두드렸다. 아이가 내 손가락을 꽉 쥐었다. 도 번 두드렸다. 아이가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 두 번 두드렸다. 아이가 한쪽 팔로 나를 감쌌다. 두 번 두드렸다. 아이가 양팔로 나를 감싸안았다. 나는 두드리기를 멈췄다.

엘마, 나는 말했다.

아이가 말했다, 네.

앨마, 나는 다시 말했다.

아이가 말했다, 네.

앨마, 나는 말했다.

아이가 나를 두 번 두드렸다. 

-본서 마지막 중에서

 

 

막바지에 쏟아졌던 영문을 알 수 없던 눈물은 아마도 저자가 빌드업해온 이야기의 산물이었을 테다. 그녀의 이야기는 마치 끊임없이 몰려오는 높은 웨이브와 같아서 그것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보드가 필요하다. 서핑 보드는 각 챕터의 화자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고, 나아가 각 챕터들 속에 담겨있는 실마리들을 꼼꼼히 발견하고, 기억한 뒤 나름대로 조합(독자를  끌어들여 눈물을 훔치는 작가의 역량이라니!)을 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주인공(여러 화자들 중 하나인)인 레오 거스키는 ‘평생의 사랑’으로 낳은 아들과 두 작품에 자기 서명을 남길 수 없었다. 그렇긴 하지만(^^-레오의 말투). 그 아들과 작품들은 그 ‘평생의 사랑’이 하사한 이름을 가진 소녀를 레오 앞에 데려다주었다. 앨마. 앨마. 앨마. 레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열다섯 살 소녀는 이름뿐 아니라 몸을 가진 실체로서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토닥여 주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사랑을 이룬 사랑의 역사였던 것이다.

 

이로써 나는 작가 니콜 크라우스에 입덕을 하게 되었고, 애석하게도 그녀의 다른 책들은 나의 독서 목록에 추가되지 않을 수 없었다.ㅋㅋㅋ

 

 

 

 

#Feb. 6. 2024.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