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

창고지기들 2024. 1. 27. 19:05

 

 

 

 

 

모린 머독의 책, <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를 읽고.

 

 

나는 시간의 축과 공간의 축에 따라 찍힌 특정한 좌표 위에서 살아간다. 흥미로운 사실은 좌표가 이동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의 축은 유동성을 갖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공간은 변하고, 시간과 공간의 변화 속에서 사람 역시 꼼짝없이 변할 수밖에 없다. 육체든, 생각이든, 태도든 할 것 없이 총체적으로. ‘인생’은 그와 같은 흐름과 변화를 멀리서 조망할 때 선명해진다. 그래서 곧잘 여정에 비유되곤 하는 것이다. 여정이란 여행 중에 거쳐가는 길이나 여행 과정을 의미한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유동적 변화를 전제로 하는 것임으로, 인생을 비유하기에 그 만한 것도 없다.

 

모린 머독의 책, <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의 부제는 ‘융 심리학으로 읽는 자기 발견의 여정’이다. 책의 전략적 독자는 ‘여성’이고, 저자가 집중하는 것은 ‘심리적 여정’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여성의 심리적 여정은 남성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이 태어난 곳이 남성 본위의 가부장적 세계인 까닭이다. 그렇게 저자는 가부장적 세계에 태어난 김에 시작된 여성의 심리적 여정을 패턴화해서 소개한다. 그것은 구조주의를 기반으로 융의 심리학과 캠벨의 신화학 융합한 책의 얼개이자 또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것을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시작은 여성성 분리(모녀분리; 어머니 거부하기)로부터 → 남성상과 동일시(아버지의 딸 되기), 그리고 조력자를 만남 → 시련의 길: 괴물과 용을 만남(열등한 여성이라는 신화) → 성공이라는 허황된 열매를 찾음(슈퍼우먼 환상, 여성스러움 경멸하기) → 정신적 메마름 자각: 죽음(아버지에게 배신당함, 남성의 가면을 쓰고 살아온 자신을 발견) → 여신으로 입문과 하강(잃어버린 여성성 찾아 나서기, 자기 치유의 순간) → 여성성과 재결함을 갈망함(내면의 슬픔 마주하기, 지혜와 창조의 여성으로 정화되기) → 모녀 분리 치료(마녀와 계모에서 벗어나 어머니 대지에서 치유받기) → 상처받은 남성성 치유(상처로 폭군이 된 아니무스 껴안기, 신성한 결혼) → 남성성과 여성성의 통합(함께하는 원의 공동체, 남성과 여성을 넘어서)으로 마무리.

 

 

독서를 통해 개인적으로 얻은 유익은 크게 두 가지다. 그 중 하나는 ‘거미 할머니’ 이미지다. 

 

많은 여성이 여성성의 신비한 영역으로 인도하는 안내자로서 ‘할머니’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대개는 할머니를 안전한 피난처나 양육의 원천, 아플 때 보살펴주는 보호자로 기억할 것이다. 헤카테 여신, 거미 할머니, 헤스티아 여신처럼 ‘할머니’는 여성이 일상에서 놓치고 있을지 모르는 여성적 통찰, 지혜, 강인함, 보살핌이라는 특성을 상징한다. -본서 중에서

 

거미 할머니는 지혜를 임신한 여성으로, 딸과 손녀에게 본연의 자기다움으로 향하는 길(성화의 길)을 안내해주는 조력자라고 할 수 있다. 때마침 성사된 완경으로 인하여, 나는 뜻밖에도 거미 할머니가 될 기본적인 준비를 마친 셈이다. 아직 미혼인 딸과 장차 태어날(!) 손녀를 위하여 나는 기어이 거미 할머니가 될 것이다! 그것을 위해 지금의 나는 완벽(perfection)과 완성(completion)의 긴장 속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나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독서를 통해 얻은 나머지 하나의 유익은 여성 공동체에 대한 소망이다. 

 

신화는 평범한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실들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거대하고 지배적인 이미지다. 다시 말해 신화는 경험을 체계화한다는 데 가치가 있다. … 여성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자신이 가는 길을 긍정해주며 자신을 지지해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본서 중에서

 

저자는 사람 본성 안에 있는 여성성과 남성성 두 측면의 결합을 통해 삶의 균형을 가져올 때 영웅이 실현되는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해 그녀는 동서양의 수많은 신화(이야기와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하지만 성경을 긍정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는 저자가 기독교와 더불어 성경까지 가부장적 산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의 견해가 마냥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성 회복을 통한 남성성 치유, 그리고 그들 간의 온전한 통합을 추구하는 시도에 있어서 성경을 제외시키는 것은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성경이야말로 그 어떤 이야기보다 서구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쳐왔고, 끼치고 있고,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경을 감싸고 있는 갑각류의 딱딱한 문자주의(가부장주의) 껍질을 벗겨낼 줄만 알면, 참되고 부드러운 하나님의 마음과 만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다.  

 

장차 완숙해질 거미 할머니로서, 나의 딸과 태어날 손녀와 뭇여성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여성 성경 묵상 모임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을 짓고, 동화를 쓰고, 성경 묵상 모임을 인도하면서, 각 연령대의 여성들과 더불어 공동체를 이루어 본연의 자신을 찾아 모험을 떠나보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성경 묵상을 통한) 속에서 가부장적 세계로부터 받은 상처들을 치유 받으면서 동시에 통합시켜나가는 일은 혼자서는 어려운 일인 까닭이다.

 

 

저자에 따르면 ‘낡은 자아’가 더는 맞지 않을 때 여성 영웅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그렇게 나는 모험 중에 있고, 그 여정 중에 만난 이 책은 내게 ‘거미 할머니’와 ‘여성 성경 묵상 모임’을 제안해준 셈이다. 데오 그라티아스!

 

 

 

#Jan. 27. 2024.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