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그냥 믿어주는 일

창고지기들 2023. 6. 24. 16:27

 

 

 

 

 

미야모토 테루의 책, <그냥 믿어주는 일>을 읽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일은 흔하다. 게다가 이런 현상은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먼저 된 책이 나중 되고, 나중 된 책이 먼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 <그냥 믿어주는 일>처럼 말이다.

 

미야모토 테루의 두 번째 에세이집인 이 책의 원제는 ‘생명의 그릇’이다. 일전에 읽었던 그의 에세이 <생의 실루엣>보다 훨씬 먼저 출판된 책이나, 한국에서는 그 순서가 뒤바뀌어 그 보다 늦게 출판되었다. 책 제목을 <그냥 믿어주는 일>로 바꾼 것은 이와 같이 나중 된 일을 오히려 기념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역자의 소개대로 이 책은 청년기의 테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그랬을까? 책장을 넘길 때마다 냄새가 났다. 여름철 웃자란 풀을 깎았을 때 피어나는 풀냄새, 혹은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하는 주정뱅이의 술 냄새와 비슷한. 하여튼, 독서의 과정은 대가(大家)는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님을, 될성부른 나무는 떡 잎부터 알아본다는 격언을 되새김질 하는 여정이었다.

 

일전에 딸아이와 함께 지방에 있는 현대미술관에 다녀왔었다. 현대 미술을 좋아하지 않으나, 딱히 가볼 곳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갔던 것인데, 역시나 나의 취향을 다시 한 번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 외에는 딱히 좋은 것이 없었다. 참하지도 선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채, 그저 새로움 만을 추구하는 현대 예술은 늘 내게 불쾌감을 주고, 심지어 어지럼증을 유발시킨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저자도 그런 듯싶어 반가웠다.

 

현대는 가짜가 진짜를 쫓아내는 시대다. 나는 새로움에 대한 잘못된 개념이 온갖 예술을 정체시켜 쇠약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새로움’ 같은 건 없다. 좋은가, 나쁜가 밖에 없는 것이다. … 무조건적으로 상대를 매혹시키는 것이야말로 아름답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언제나 ‘새롭다’. -본서 중에서

 

게다가 젊은 시절 저자와 비슷한 고민을 중년의 나도 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 “……다”로 끝낼지 “……것이다”로 끝낼지는 문장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문제다. 내가 작품을 쓸 때도, 그 작품이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세상에 나온 뒤에도, 한 줄의 문장을 끝맺을 때 “……다”가 좋은지 “……것이다”가 좋은지 “……것이었다”가 좋은지 아무래도 결단을 내릴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문장의 기세, 문장의 안정감 등이 그런 사소한 구분에서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본서 중에서

 

과연 그는 문장에 대한 확실한 답을 찾았을까? 대략 그랬을 거라고 치부하기로 했다. 그래야 나 역시 끝까지 질문을 붙들고 답이 손수 찾아오기까지 기다릴 수 있을 테니까.

 

 

고바야시 히데오 씨는 어느 평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생명의 힘에는 외적 우연을 곧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갖추어져 있는 법이다. 이 사상은 종교적이다.” … 병에 걸린 것과 이케가미 기이치 씨를 만난 것. 이는 모두 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는데, 그 터닝 포인트가 찾아온 방식은 고바야시 히데오 씨의 명언을 빌리자면 거의 종교적이기조차 했다. -본서 중에서

 

저자에게는 이미 생명의 힘이 있었다. 그래서 삶에서 일어난 외적 우연을 내적 필연으로 바라볼 줄 알았던 것이다. 즉, 저자는 자기 인생에서 일어난 외적 우연 두 가지를 골라내어 그것을 내적 필연으로 바라봄으로써 그 우연들이 자신을 작가로 만들었다고 해석했다. 기독교적으로 번역하자면, 저자에게는 인생에 드리워진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영적 안목이 있었고, 그로 인해 그는 이야기를 창조하는 작가가 되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영적이지 않은 작가는 없는 듯하다. 물론, 추구하는 방향은 저마다 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문장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를 믿지 않으면, 단 한 줄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본서 중에서

 

몇 십 년 만에 학교 과제용 레포트를 써대느라 허둥대는 날들이었다. 정보와 내용을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글짓기를 거듭하느라 문장에 대한 입맛을 잃어버렸다. 이 책은 그 와중에 공급받은 미음 같은 것이었다. 아마 다음에 독서할 저자의 책은 <금수>가 될 듯한데(이미 구입해 놓은 관계로), 언제 다시 만나게 될는지는 모르겠다. 그 때까지 잠시만 안녕.ㅋ

 

 

#Jun. 24. 2023.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