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있는 두 눈
머릿속에 있는 두 눈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창48:10)
어느덧 인생의 늦가을에 이른 야곱이었다. 저 만치에 있는 겨울(죽음)의 입구가 시야에 들어올 때 즈음, 그는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그의 눈 멈은 아버지 이삭과의 것(창27:1)과는 달랐다. 이삭의 경우, 자기 시력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식탐을 맺었으나, 야곱은 안목과 통찰력을 맺었다.
지혜자는 그의 눈이 머리 속에 있고(전2:14)
전도서의 저자 코헬렛에 의하면 지혜자의 눈은 머릿속에 있다. 머릿속에 있는 눈은 사물의 좋고 나쁨 혹은 진위나 가치를 분별하는 안목을 말한다. 이는 사물을 훤히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월을 따라 싱싱한 시력을 잃어버린 것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이미 노인이 되어버린 야곱에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머릿속에 새롭게 창조된 시퍼런 두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력을 잃는 대신에 안목과 통찰력을 얻은 야곱의 삶은 분명 이전과는 달랐다. 눈에 좋아 보이는 축복(예를 들면, 장자권이나 라헬)을 손에 넣기 위해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 부은 이가 성인기(成人期)의 야곱이다. 그러나 노인기(老人期)에 접어든 야곱은 축복을 쟁취하는 대신에 축복을 나누어 주는 자로 변신한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유치한 삶의 방식에서 떠나야 하고, 젊은이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를 떠나야 하듯이,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이 다시 한 번 성숙해지고 의미 있는 가을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인기까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노년기의 과제는 과거를 경멸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로부터 교훈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현재도 가치 있는 교훈, 과거에서 멀어질수록 그 가치를 더해 가는 교훈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 시기는 인간이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서 인생에서 무엇이 가치 있는가 하는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시기입니다. 전쟁터와 같은 성인기 한복판에서보다 훨씬 평온해진 마음으로 인생을 바라보며 그 가치를 풀 수 있는 시기입니다. -폴 투르니에의 책, <인생의 사계절> 중에서
노년기 야곱의 정체성은 축복하는 자다. 입만 열면 불평을 쏟아내던 출애굽 1세대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이가 노인 야곱이다. 그는 입만 열면 축복을 쏟아냈다. 노년기의 과제, 즉 과거로부터 교훈을 찾아내어 현재를 비롯하여 미래에도 여전히 건재할 가치와 의미를 분별해낸 야곱은 그것으로 후대를 축복했다. 그는 머릿속의 눈들로 인생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신비를 더 깊이 발견하고 파악할 때마다 축복의 언어 역시 더 풍성하게 계발하고 발전시켜갔을 것이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창47:7)
그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창48:20)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창49:1)
두 눈을 잃고 탐식에 눈을 뜬 이삭의 축복은 빈약했다. 그에 비하면 야곱의 축복은 얼마나 풍성하고 풍요로운지! 그는 이집트의 바로를 축복했고, 요셉의 장자인 므낫세가 아니라 차남인 에브라임에게 의도적으로 장자의 축복을 해주었으며, 유언의 형식으로 나머지 열 한 아들들에게 예언이 담긴 축복을 했다. 그럼에도 그의 축복은 결코 남발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철저히 머릿속의 두 눈으로 본 안목과 통찰력에 따랐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현실에서 부족한 것을 미래에 채울 수 있다고 스스로 속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우리는 꿈에서 깨야 합니다. 한 가지 목표를 이루고 나면 이루지 못한 다른 열 개의 목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인생의 부족감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커져만 갑니다. 우리는 이룰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만족이 있으면 환멸도 있게 마련입니다. 성공이 있으면 반드시 실패도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실패가 성공보다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됩니다. 실패는 우리의 가치 체계를 재검토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가치 체계의 재검토야말로 곧 이어지는 노년기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폴 투르니에의 책, <인생의 사계절> 중에서
하진군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준비 중이다. 이는 빈 둥지(empty nest)의 때가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문득, 지금껏 그분과 함께 아이들과 살아오면서 선택한 것들과 포기한 것들이 참가 번호를 달고 하나씩 앞으로 나와 손을 흔들면서 자신을 소개한다. 이전에 내가 선택한 미녀는 어느새 늙어 시들하고, 나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미녀들은 여전히 싱싱하기만 하다. 자주 초조해지는 것은 나의 선택이 실패인 것만 같기 때문일까? 육신의 눈으로 보면, 대략 실패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뭐 하나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것이다.
빈 둥지가 된 텅 빈 집안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있을 나를 상상해 본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유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내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주목해 본다. 지금까지 해왔던 사역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진로로 성큼 들어설 것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 허나, 분명한 것은 지금이야 말로 머릿속의 두 눈을 시퍼렇게 떠야할 때라는 것이다.
물론,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도 있다. 그분께 감사함으로 나를 쪼개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 그들로 배불리 먹게 하는 일이야 말로 삶을 가치 있게 한다는 것. 많이 피곤하고, 철저히 귀찮고, 그래서 몹시 게을러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견뎌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야곱처럼 될 것이다. 풍성하고도 풍요로운 축복의 언어를 계발하여 나누는 자, 곧 축복을 일삼는 자가 되고야 말 것이다. 키리에 엘레이손!
#Feb. 3. 2023. 사진 & 글 by 이.상.예.